유일호 부총리가 정부주도 산업 구조조정을 선언한 지도 벌써 석 달째다. 하지만 산업·수출입은행 등 채권단의 능력부족이 먼저 도마에 올랐고 4월 총선 이후 정부 추진력에도 힘이 빠지면서 무언가 겉도는 분위기가 계속되고 있다. 노조의 저항, 정치권 참견 등 걸림돌만 부각된다. 구조조정 재원에서 논의가 시작된 추경도 이제야 정부안이 나왔다.

이런 와중에 기업구조조정 책임자에게 면책권을 보장하자는 논의가 국회에서 제기돼 주목을 끈다. 구조조정 같은 정치·사회적으로 민감한 사안을 추진하는 정책담당자들이나 채권단의 애로는 짐작이 간다. 정치 권력의 향방만으로도 좌불안석인데 국회는 너무도 쉽게 청문회 운운하며 겁까지 준다. 지난주 국회에서 개최된 관련 세미나에서도 구조조정 애로 사항에 대한 하소연이 넘쳐났다. 결국 면책권을 줘야 공직자들이 움직인다는 주장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이는 옳은 방법이 아니다.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공무원은 법에 따라 일을 하는 법 집행자다. 정당한 법 집행이라면 흔들릴 이유가 없다. 위법이나 비리가 아니라면 정책 결정만으로는 화를 입지 않는다. 물론 ‘책임’은 당연히 따르는 것이다. 책임 없는 권한이라면 원님들의 일 처리에 지나지 않는다. 권한은 갖되 책임은 없는 영역은 어디에도 없다. 지난주 세미나에서 거론된 소위 ‘변양호신드롬’도 부적절한 사례다. 변양호 신드롬은 당시 일부의 오해가 만들어낸 잘못된 용어일 뿐 책임 때문에 일을 못 하겠다는 것이야말로 비약이요, 오류다. 2003년 외환은행 론스타 매각 때의 은행법 개정은 두고두고 논란을 빚은 사안으로, 일부 논점과 배경에 대한 의혹은 지금도 풀리지 않고 있다. 더구나 변양호 당시 국장이 옥사까지 겪고 무죄를 받은 것은 수뢰에 대한 검찰의 오판 때문이었다.

비리가 아니라면 두려워할 게 없을 정도로 우리 공무원은 신분이 보장된다. 감사원도 ‘설거지하다 보면 그릇이 깨질 수도 있다’는 원칙을 적용해왔다. 구조조정이 겉도는 것이 면책 여부 때문이 아니다. 지금도 공직은 무소불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