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으로 구설에 오르는 기업이 많다. 비자금 조성 혐의 등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롯데그룹을 비롯해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으로 불매운동 대상이 된 옥시, 2014년 일명 ‘땅콩 회항 사건’으로 지탄을 받은 대한항공 등이 대표적이다.

자신이 속한 회사가 세간의 입방아에 오르내릴 때마다 김과장, 이대리들은 벙어리 냉가슴을 앓는다. 꼬치꼬치 사정을 묻는 친·인척부터, ‘너도 가담했느냐’고 힐난하는 친구까지…. “내 탓은 아니다”고 해도 “그 회사에서 월급받고 있지 않냐”는 말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는 게 이들의 말이다. 검찰 수사를 받은 대기업의 과장은 “본의 아니게 공범자 취급을 받더라”며 “앞으로는 회사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기도한다”고 털어놓았다.

◆회사 때문에 덩달아 ‘하자품’ 취급

[김과장 & 이대리] "너희 회사 뉴스에 나왔더라?"…왜 회사 잘못이 내 잘못이죠? ㅠㅠ
대기업 전자부품 계열사에 다니는 박모 대리(33)는 지난달 상견례에서 겪은 ‘수모’를 생각하면 얼굴이 붉어진다. 결혼을 허락받기 위해 여자친구 아버지를 만난 박 대리는 “자네 회사는 실적도 나쁘고 전망도 안 좋다는데 솔직히 걱정된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래서 내 딸을 책임질 수 있겠느냐”는 예비 장인의 말에 서운할 정도였다. 그는 “회사 실적이 나쁜 건 내 탓이 아닌데, 회사 때문에 ‘하자품’ 취급받은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상장사인 그의 회사에 투자한 친구들에게 주가 관련 불만을 듣는 것도 스트레스다. 박 대리는 “주가가 크게 떨어진 날 ‘너희 회사는 대체 뭐하냐’는 메시지를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자동차 회사에 다니는 최모 대리(32)도 회사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 탓에 고민이 많다. ‘내수용 차와 수출용 차를 차별한다’, ‘급발진이 잦다’, ‘에어백이 잘 안 터진다’, ‘원가 절감하려고 얇은 철판을 쓴다’ 등 사실과 다른 유언비어가 인터넷을 통해 진실처럼 퍼져서다. 심지어 친구조차 “내수 차별하는 독점 기업이라 네 월급이 나보다 많은 거 아니냐”고 핀잔했다.

그는 “공신력을 갖춘 글로벌 기관의 안전성 테스트에서도 우리 회사 차가 외국산 차보다 안전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며 “회사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움직여서 ‘억울함’을 풀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잘못은 회사가, 해명은 직원이

유통기업 본사에서 근무하는 김모씨(28)는 요즘 모임에 나가는 게 두렵다. 지인을 만날 때마다 회사 관련 질문에 시달려서다. 김씨의 회사는 비자금 조성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이 사실을 들은 지인들이 “비자금 조성 사실을 알았냐”, “검찰 압수수색 사실을 알지 않았냐”, “압수수색 전에 증거파일을 미리 지우지 않았냐” 등 취조성 질문을 쏟아내고 있는 것. “나는 모른다”고 진실을 말하면 “본사에서 일하면서 그런 것도 모르냐”고 힐난하는 통에 머리가 아프다. 그는 “설령 회사가 압수수색 사실을 미리 알았다 해도 일개 사원인 나한테까지 그 사실이 전해지겠느냐”며 “본의 아니게 ‘회사 대변인’ 역할을 하게 된 바람에 노이로제에 걸릴 정도”라고 한탄했다.

최근 보험사에 입사한 신입사원 장모씨(29)는 주변의 각종 민원에 시달리고 있다. 평소 연락이 없던 고교 동창이 전화를 걸어와 “접촉사고 이후 정비소에서 부실한 수리를 받아 보험사에 불만을 제기했지만 해결되지 않았다”며 자문과 민원 처리를 요구한 일도 있다. “계약 규정상 원래 보장이 안 되는 부분”이라고 설명을 해줬지만 친구의 불만은 계속됐다. 장씨는 “내가 판매한 보험상품도 아닌데 단순히 보험사에 다닌다는 이유로 대신 불만 상담을 해야 하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시부모처럼 회사 일 참견

중견 건설회사 마케팅팀에서 일하는 김모 대리(36)는 주변에서 부동산 얘기를 듣지 않는 게 소원이다. 부동산 경기가 좋아지면서 아파트 분양가가 치솟자 지인들이 “회사가 돈 잘 벌어 좋겠다”는 비아냥 섞인 불만을 늘어놓아서다. “그 돈으로 직원들도 한 채씩 받느냐”는 사람도 있었다.

정작 김 대리는 늘어난 분양사업 탓에 업무 강도가 세져 야근은 물론 주말 출근까지 감수하고 있는 상황이다. ‘내 집 한 채’는 김 대리에게도 꿈이다. 김 대리는 “집값이 비싸지면 직원들도 집을 사기 힘들어지는 건 마찬가지”라며 “미분양이 발생할 때 직원들이 억지로 떠안는 경우는 있어도, 호경기 때 좋은 집을 회사에서 저렴하게 주거나 우선 선택할 권리를 주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국내 대형 회계법인에 근무 중인 최모 회계사(40)는 올초부터 지인들에게 ‘회사 괜찮냐’는 소리를 듣고 있다. 최 회계사가 다니는 회계법인은 지난 상반기 회계 오류 의혹에 압수수색, 고소 등 온갖 부정적 이슈에 휘말렸다. 이 때문에 회사는 비상사태에 돌입했지만, 최 회계사의 업무에는 지장이 없다. 회계법인 특성상 회계사들은 업무를 독립적으로 하기 때문에 해당 이슈에 직접 연관되지 않는 한 사실상 ‘남의 일’이어서다.

심지어 회사 일을 걱정하는 부모님과 지인의 우려를 듣고 뒤늦게 뉴스를 찾아본 뒤 사태를 파악한 일이 있을 정도다. 게다가 최 회계사의 팀은 최근 큰 프로젝트를 따내 축제 분위기나 다름이 없는 상태. 그는 “회사가 잘못돼도 전문직인 우리 팀원들은 얼마든지 이직이 가능하다”며 “주변에서 지나친 걱정을 해 불편할 정도”라고 말했다.

윤희은 기자 so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