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표류기] 밥 벌러 밥 버린 도시 청춘들…"미안해 엄마"
[편집자 주] ‘청년 표류기’는 세상과 사회라는 뭍에 무사히 닿기 위해 표류하는 우리네 청춘의 이야기입니다. 청년과 소통하기 위해 명함 대신 손을 내밀고, 넥타이 대신 신발 끈을 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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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시간에 6만원, 호텔 설거지 현장 속으로

↑ 다른 식기세척 아르바이트 청년의 모습은 모자이크 처리했습니다.

지난 6일 오전 11시 서울 삼성역 △번 출구. 또래의 20·30대 청년 9명이 모였다. 호텔 설거지 단기 아르바이트(알바). 두 달째 일했다는 한 남자를 따라 인근 유명 호텔로 이동했다.

호텔 입구에 신분증을 맡기고 서명을 했다. 비상계단을 통해 지하로 내려갔다. 고객이 아닌 알바생으로 호텔에 온 실감이 났다. 작업복과 장화를 신었다. 하루지만 근로계약서를 작성했다. 인적 사항과 시급 6500원, 정오부터 밤 10시까지 10시간 근무시간이 명시돼있었다. 앞선 택배 상하차 아르바이트 때는 근로계약서 따윈 없었다. 그나마 설거지 알바 첫 인상은 인간적이었다.

공짜 점심을 먹고, 오늘의 일터, 세척장 5층으로 향했다. 이날 5층 오전 연회장에는 900여 명이 참석하는 대규모 행사가 있었다. 이들 900명이 먹은 도시락 잔반과 식기류를 처리하기 위해 기자를 포함한 10명의 알바생이 연회장 뒤편 식기세척장에 모인 것이다. 호텔 직원이 공지했다.

“오늘 알바로 왔지만 유니폼을 입은 순간은 직원입니다. 예의 있게 행동해주시고 불미스러운 일 발생하지 않도록 해주세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다치지 않는 겁니다. (바닥 물기를 가리키며) 절대 뛰지 마세요."

작업구역을 나눠주었다. 기자는 알바생 2명과 함께 식기세척장 입구 앞에 섰다. 셋의 임무는 900여 명이 먹은 도시락의 잔반을 비운 뒤, 세척장에 식기를 전달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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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 뒤, 연회장 서빙 직원들이 먹고 남은 도시락을 들고 오기 시작했다. 전복, 새우, 갈비, 연어, 잡곡밥, 샐러드, 카스테라 등이 담긴, 약 4만원짜리 고급 도시락이라 했다. 하루 알바 가격에 달하는 도시락. 정갈하게 담긴 고급 반찬과 밥, 후식 등에 군침이 돌 정도였다.

세척장으로 들어온 도시락을 여는 순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맛있는 반찬과 밥이 그대로 수북하게 남아있었다. "아깝다"는 생각도 잠시, 오늘의 임무로 이 음식을 다 버려야한다. 먼저 그릇을 손끝으로 집어 잔반통 위에서 뒤집었다. 떨어지는 반찬들이 손에 묻으며 잔반은 급격히 쌓여갔다. 도시락은 더 빠르게 밀려들어왔다. 잔반을 쓸아담는 손은 이내 양념 범벅이 됐다. 잔반이 남지 않은 도시락은 손을 꼽을만큼 없었다. 6만원 알바비를 벌러 온 입장에서 "다들 배가 불렀구나"하는 탄식이 새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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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 30분 간 1차 잔반 처리가 끝났다. 30분의 쉬는 시간. 함께 일한 남성에게 말을 걸었다.

“올해 25살이고 대학생이에요. 방학이라 단기 아르바이트하러 왔어요.”

일이 힘들진 않냐 묻자 그는 웃으며 말했다. “취사병 출신이에요.”

짧은 대답이었지만 유독 빨랐던 그의 손놀림이 납득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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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올라온 세척장, 이번에는 설거지 작업에 투입됐다. 세척장 싱크대 위에는 도시락과 그릇들이 쌓여있었다. 먼저 잔반을 비운 그릇을 사람이 닦고, 기계로 세척한 뒤 다시 사람이 종류별로 분류한다. 기계가 주 세척을 담당했지만 시작과 끝은 사람의 손이 필요하다. 분류 과정에서 이물질이 묻어있으면 첫 세척 과정으로 되돌린다.

고무장갑과 앞치마를 둘러매고 그릇 앞에 섰다. 한 시간쯤 정신없이 도시락 그릇을 닦았다. 씻어야하는 국그릇이 눈 앞에 수북히 쌓여있었다. 다 먹지 않은 국물이 그대로 남은 상태로 포개져 있어 분리하기 쉽지 않았다. 가뜩이나 깨지기 쉬운 도자기 소재라 주의도 필요했다.

처음이라 작업 속도는 더딜 수 밖에 없었다. 이내 호텔 직원의 잔소리가 날아들었다.

”하루 종일 그거만 하실 거예요?"

그릇이 잘 안 빠져서 그렇다 변명하고 싶었다. 그리고 처음이라 그렇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여긴 돈을 벌어야하는 일터다. 입을 꾹 다물었다. 사실 기자는 설거지가 싫어 집에 라면 끓일 냄비조차 없는 자취남이다. 하지만 밥을 벌기 위해선 현실을 받아들여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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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어 시간의 설거지가 끝났다. 기계를 통해 세척된 그릇을 분류하는 다소 수월한 작업이 이어졌다. 뜨거운 그릇들은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쏟아졌다. 한 명의 남성과 호흡을 맞춰 그릇을 정리했다. 넘어오는 그릇이 뜸해질 무렵, 그와 대화를 나눴다.

“36살이고 공무원 시험 준비 중이에요. 어릴 때 준비했던 시험 다시 보려고 1년 전에 회사도 관뒀어요. 이렇게 일하고 돌아가면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순간이 고맙게 느껴져요. 더 열심히 해야겠다 생각도 들고요.”

그는 시험 준비로 시간이 없어 단기 알바만 한다고 했다. 육체의 고단함을 통해 꿈의 소중함, 어쩌면 인생의 오기를 키우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나도 모르게 공무원 꿈이 이뤄지길 속으로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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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5시, 1시간 저녁시간이 주어졌다. 식사 뒤 알바생끼리 휴게실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26살의 대학생, 28살의 취업 준비생, 29살의 프리랜서 작가였다. 나이도 직업도 달랐지만, 돈 벌러 온 20대라는 이유는 같았다.

평소 집에서 설거지를 하냐 묻자 모두 고개를 저었다.

“설거지는 항상 어머니 몫이었는데 이젠 제가 좀 하려고요.” 친구와 여행 갈 돈을 벌러 왔다는 대학생은 어머니를 향한 미안함을 드러냈다.

기자도 이날 어머니를 떠올렸다. 어린 시절 그릇에 묻은 이물질은 모두 어머니께 닦아달라고 했었다. 설거지는 지금도 싫지만 그 때는 아예 내 일이라고 생각지 않았다. 다른 이들도 설거지를 하며 느낀 점들을 말했다. 모두 과거를 반성하고 있었다. 그 순간만큼은 우리 모두가 효자였다.

오후 7시. 이제 후반전. 남은 도시락들이 세척장에 도착했다. 그런데 이번엔 더 놀라웠다. 대부분이 손도 대지 않은, 뚜껑도 열어보지 않은 새 도시락이었다. 전복, 새우, 갈비, 연어, 잡곡밥, 샐러드, 카스테라 등은 처음 담긴 고운 자태 그대로 음식물 쓰레기통 앞에 섰다.

그대로 잔반 통에 버리라는 지시였다. 불과 1초 사이에, 4만원짜리 고가 도시락은 사람이 먹을 수 없는 음식물쓰레기로 전락했다. 호텔의 입장에서 도시락은 행사 인원 수대로 돈을 벌어주는 수단이다. 사람이 음식을 먹든 말든 이미 이들 음식값은 다 지불됐다. 남김없이 버려도 호텔의 손해는 없다. 도시락 값을 지불한 행사 측도 아까울 건 없었다. 식품 관련 위생법도 호텔이나 식당은 남은 음식을 식탁 위에 재활용할 수 없다고 못박고 있다.

아무도 법을 어긴 사람은 없었다. 다만 멀쩡한 음식이 한 순간 쓰레기로 돌변하는 이 찰나의 과정은 차가운 이 도시만큼이나 비정하고 쓸쓸했다. 호텔이든, 도시락값을 낸 행사 측이든, 법이든 누구 하나 이 버려지는 멀쩡한 음식을 보살피지 않는다. 마치 블랙홀 같은 암흑 속으로 도시락의 살아있던 가치는 증발해버리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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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7시 30분, 마지막 30분 쉬는 시간. 휴게실 TV에 뼈가 앙상하게 드러난 아이들의 배고픔을 도와달라는 유니세프의 광고가 나오고 있었다. 이 무슨 얄궂은 타이밍인가. 멀쩡한 도시락 수십개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온 우리 알바생들 앞에, 유니세프가 웬 말인가.

“아.. 아까 도시락 다 내가 버렸는데, 지옥 가면 내가 다시 주워 먹겠지?"

TV를 본 프리랜서 작가 남성이 한숨을 내쉬었다.

“서울 어딘가에도 분명 굶고 있을 사람들이 있을 텐데. 멀쩡한 도시락인데 어디 나눠주면 안 되나? 호텔 입장에도 남는 도시락으로 봉사하면 쓰레기도 줄고 좋잖아요.”

그대로 도시락을 버리는 상황을 안타까워하는 말들이 휴게실에 넘실거렸다. 다른 알바생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쉬움도 잠깐, 탄식도 잠깐, 우리는 다시 알바비를 벌기 위해 세척장에 섰다. 오늘 알바비가 버려지는 도시락 걱정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내 자신이 얄팍하게 느껴졌다. 내 일이 아닌 아닌 남 일은 결국 쉽게 잊혀지는 버려지는 법이었다.

오후 9시 무렵 설거지는 종료됐다. ‘한 시간 일찍 끝나지 않을까’ 생각하던 찰나, 직원은 알바생을 다시 모았다.

“먼저 집 갈 사람 계십니까?” 직원이 묻자 한 알바생은 "10시까지 하는 게 좋다"고 살짝 귀띔했다. 결국 모두 퇴근하지 않았다. 그의 말에 따르면 밤 9시 이후는 야근수당을 주기 때문에 1시간만 더해도 1만원 가량 더 받는다. 5만원이냐 6만원이냐. 1만원 차이는 모두에게 컸다. 직원 명령에 따라 식기 보관 선반부터 그릇 옮기는 카트까지 세척장 곳곳을 청소했다. 대청소였다.

“이런 대청소는 처음이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갈 걸 그랬나 봐, 허허.” 2달간 일했다는 알바생도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예정에 없던 작업인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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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0시. 10명 모두 서로 고생했다는 말과 박수를 주고받으며 지하로 내려갔다. 젖은 유니폼과 장화를 반납하고 지상으로 올라왔다. 호텔 입구에서 맡긴 신분증을 되찾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다들 배고픔을 호소했다. 결국 다시 밥이었다. 밥 먹고 살기 위해 돈을 벌러 와서 밥을 쓰레기로 버린 청년들은 다시 밥타령을 했다.

김훈의 책 '라면을 끓이며'의 표지.
김훈의 책 '라면을 끓이며'의 표지.
소설가 김훈은 모든 밥에 낚시바늘이 있다고 했다. 한번 먹으면 바늘에 목구멍이 꿰어 평생 밥 쪽으로 끌려다닐 수 밖에 없다고, 다시 밥을 벌기 위해 인생의 바늘이 박힌 밥숟갈을 뜨거운 목구멍 속으로 숙명처럼 끊임없이 넘겨야 한다고 말이다. 밥벌이의 고단함, 생의 '비애(悲哀)'라 했다.

한 기자 선배가 들려준 그의 대학 시절, 비애적 밥 이야기가 떠올랐다. IMF 사태를 맞고 대학에 들어갔고, 가세가 기운 뒤 군을 제대한 그 선배는 나머지 대학 5학기를 학자금 대출과 알바로 연명하며 졸업했다.

난생 처음 학자금 대출 350만원을 받던 날, 홀로 받은 3500원짜리 백반 앞에서 그는 하염없이 울었다고 했다. 현재의 가정 형편과 미래의 상환능력을 캐묻던 은행 대출계 직원 앞에서 그는 문득 모든 게 두려워졌다고 했다.

학생에게 거금 350만원을 빌려주는게 고마우면서도, 눈 저 구석은 온통 시큰거렸고, 담배로 쩌든 입은 걸레처럼 텁텁했다고. 다시 알바 가기 전 김치찌개에 만 밥을 입 속으로 밀어넣던 그 순간 뿌연 수증기가 안경알을 뒤덮었고, 그는 자기도 모르게 울어버렸다고 했다.

그 때 선배는 수증기 덕에 우는 꼴이 보이지 않을 거라 안심했던 걸까. 선배는 기억했다.

"엄마 생각이 났어. 세상의 모든 모진 밥 앞에서는 항상 엄마가 떠올라. 철은 그 모진 밥들 앞에서 드는 거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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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 김민성, 연구= 이재근 한경닷컴 기자 rot011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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