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게임으로 번진 '위작 사건'

[뉴스의 맥] 이우환 위작 논란, 실종된 감정 절차가 문제다
‘99점의 위작(僞作)이 진작(眞作)이 되는 한이 있어도 한 점의 진작이 위작으로 감정되는 비극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된다’는 말은 감정가들 사이에 신조처럼 자리잡은 감정의 대원칙이다. 그런데 이우환 위작 논란과 관련, 국내 미술계 전체가 혼돈에 빠져 있다. 이번 위작 논란은 경찰이 위작으로 발표한 이우환 화백(80)의 작품 13점 전체가 작가에 의해 진작으로 감정되면서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보지 못한 어이없는 사건이 됐기 때문이다. ‘미술관의 역사와 위작의 역사는 동일하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위작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다.

최고가를 기록하는 작가의 작품은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 문제는 위작을 가려내는 절차와 전문성이 얼마나 잘 갖춰져 있는가 하는 점이다.
[뉴스의 맥] 이우환 위작 논란, 실종된 감정 절차가 문제다
이번 사건의 쟁점은 크게 세 가지다. 우선 2012년 이후 4년간 지속된 논란 속에 경찰 수사로 이어졌으나 이우환 화백 본인의 감정의견이 없이 지난 2일 경찰이 13점 전체에 대해 위작 판정을 내렸다는 것이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법 화학, 디지털 분석 등을 통해 이른바 ‘과학감정’을 한 결과와 다른 단체의 의견을 종합해 심도있는 분석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자신이 직접 그렸다는 위조범의 자백, 거액의 작품값 일부가 위조 관련자에게 흘러들어간 정황을 감안하면 경찰의 위작 판정은 타당하다고 유추할 수 있다.

그러나 미술품 진위의 결론은 40년 이상 감정 분야에 종사해온 전문가도 감쪽같이 속을 만큼 모호하고 예측불허의 요소들이 작용한다. 이번 논란에서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가장 기초적 절차인 생존작가 본인을 배제하고 전체를 위작으로 발표했다는 것이다. 물론 예외는 있다. 작가가 진술이 불가할 정도로 와병 중이거나 범죄에 직접 관련이 있을 때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이우환 화백이 둘 중 하나에 해당한다고 봤다는 것인가. 참으로 아쉽고 다시는 반복해서는 안 될 절차다.

두 번의 발표와 두 개의 진실

물론 작가 자신의 감정이 절대적일 수는 없다. 작가가 실수한 사례가 드물게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우선적인 참고사항이 돼야 함은 굳이 외국 사례를 들지 않더라도 기본 상식이다. 이런 절차, 권리와 함께 한편에서 작가감정은 상대적인 의무를 지닌다. 만일 작가가 사실을 왜곡했다면 그의 예술세계를 불문하고 윤리적 차원의 추락을 면치 못한다. 프랑스법에서는 작가와 더불어 상속인에게도 도덕적 권리를 부여한다. 창작자에게는 작품을 인정할 권리와 부정할 권리가 주어지며 이는 재판에서도 단순한 증거 이상으로 존중된다.

신조어 ‘미술품 과학감정’이 주목을 끌었다. 이번 수사 과정에서 적용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법 화학, 디지털 분석은 당연히 최상의 신뢰도를 지닐 수 있다. 물감 원소성분 분석 결과 아연이 진작에 들어 있으나 의뢰작에는 없다거나, 의뢰작 4점에서는 다른 작품에 없는 유리가루를 발견하는 등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이런 연구는 좀 더 명확히 표현하면 ‘과학감정’이 아니라 ‘과학분석’이라고 해야 맞으며 훌륭한 보조수단에 해당한다. 고대 도자기를 감정할 때 이런 분석이 매우 유용한 자료로 활용되는 예가 많다.

하지만 작가와 같은 시대에 같은 재료를 사용했거나, 작가가 매우 다양한 재료와 기법을 사용하는 경우 그 정확도는 급격히 떨어진다. 이런 이유로 작가의 예술성, 주요 경향, 채취, 기법, 출처, 서명, 액자, 화제 등을 다양하게 종합해 감정하는 안목감정을 95% 이상 우선시한다.

과학분석을 한다 해도 우선 대상 작품의 표본을 채취해 방대한 데이터베이스(DB)를 마련하는 등 비교 자료와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 이우환 화백의 압수 작품만 해도 1970년대 작품이 다수여서 당시의 연대별, 기법별, 제작지별로 객관적이고 다양한 작품 표본이 있어야만 최소한의 분석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2일 경찰은 압수 작품 13점 전체를 위작으로 발표했지만 작가는 2회에 걸친 감정 결과에서 13점 모두를 진품으로 결론지었다. 경찰의 발표를 완전히 뒤집는 파란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결과다.

해소되지 않은 의문사항

이우환 화백은 진작판정의 구체적인 이유에 대해 ‘호흡, 리듬, 채색기법’ 등에서 “물감, 붓 등을 그때그때 다르게 사용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연대가 다른 못의 사용, 질감 및 점과 선의 방향 차이, 캔버스 덧칠 등에 대한 구체적인 답변은 생략했고 일본으로 건너가 관련 자료를 확보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물론 당시 작가의 관점에서 보면 자신이 사용하는 구체적인 재료를 세세하게 나열하거나 기법, 필법을 일일이 밝히는 것은 위조범들에게 해답을 제시하는 꼴이 되고 작가의 창작권리에도 많은 문제를 야기한다.

하지만 이번 사안은 초유의 사건이고 미술계 전체의 윤리적 향방을 가르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미술품이 문화자산과 공공재적인 성격을 지녔다는 점에서는 더욱 그렇다. 40년 된 작품들이라서 어려움은 따르겠지만 경찰이 제시한 캔버스에 쓰인 다른 연대의 고정핀(타카), 도장 등 의문사항을 포함한 여러 가지를 좀 더 설득력있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 더불어 향후 작품 DB 구축과 호적 초본 격인 카탈로그 레조네(전작 도록) 작업 등은 당면과제로 인식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아무리 작가의 주장이 진실성을 지녔다고 해도 많은 작품이 미궁에 빠지면서 감정불능으로 갈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 사건은 사실상 초기단계에서 생각보다 쉽게 정리될 수 있었다. 작가와 감정단의 의견을 동시에 수용하고 재료 분석을 참고하면서 세심히 비교해 보고서를 작성하는 등 기본 절차를 거쳤다면 두 개의 진실게임은 애초에 없었을 것이다. 25년을 끌어오고 있는 천경자의 ‘미인도’ 역시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경찰과 작가가 독자적으로 발표함으로써 극단적 대립구도만 남은 형국이다.

感情에 치우쳐선 안 돼

사유적 절제미학을 점·선 등으로 표현하며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구사해온 이우환 화백은 백남준 이후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소중한 ‘문화국격’을 대표하는 작가와 예술 자원을 어이없는 시스템 실수로 스스로 짓밟는 행위는 결코 반복돼서는 안 된다. ‘감정(鑑定)’이 ‘감정(感情)’으로 치우쳐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감정사들은 절감한다. 이제라도 근거없는 추단을 절제하고 한 발씩 물러서서 작가, 감정계, 경찰 등 구성원 모두가 합리적인 토론과 자료 연구, 리포트 작성을 통해 진실을 밝혀야 한다.

최병식 < 경희대 미술대학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