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전희성 기자 ♣♣lenny80@hankyung.com
일러스트=전희성 기자 ♣♣lenny80@hankyung.com
2009년 어느 날, 애덤 그랜트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교수는 한 학생으로부터 자신의 사업에 투자해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사업 계획을 들어보니 온라인으로 안경을 팔겠다는 허무맹랑한 얘기였다. 그랜트 교수는 “누가 안경을 매장에서 직접 써보지 않고 사겠냐”며 그의 제안을 거절했다. 온라인 안경 판매점 ‘와비파커’에 투자할 기회를 놓치는 순간이었다.

그랜트 교수를 찾아온 학생은 와비파커의 공동 창립자이자 공동 최고경영자(CEO)인 닐 블루멘털이다. 그를 비롯한 4명의 젊은 창업가들은 투자금 마련에 어려움을 겪었고, 2010년 2월 웹사이트조차 제대로 마련하지 못한 채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 회사는 창업 5년 만에 기업가치 12억달러(약 1조4000억원), 연 매출 1억달러에 달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지난해엔 구글, 애플, 알리바바 등을 제치고 미국 경영 월간지 ‘패스트 컴퍼니’가 뽑은 가장 혁신적인 기업에 선정됐다.

그랜트 교수는 당시를 회상하며 “일생일대 최악의 선택이었다”고 말한다. 그는 당시의 실패 원인을 곱씹어 독창성에 대한 통찰을 담은 《오리지널스》를 펴냈다.

“안경값 왜 비싸야 하나”

블루멘털의 와튼스쿨 동기인 데이브 길보아는 학기 시작 전 태국 여행에서 안경을 잃어버렸다. 시력이 나빠 안경이 필요했지만 700달러나 하는 안경을 살 돈이 없었다. 그는 학기 내내 안경을 마련하지 못했고 동료들에게 안경이 너무 비싸다고 불평했다. 다른 세 명의 동료도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안경을 쓰고 있었다.

블루멘털은 안경 유통 구조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그는 5년간 ‘비전 스프링’이라는 비영리단체(NPO)를 운영했는데, 이 단체는 개발도상국의 시력이 나쁜 사람들에게 적당한 가격에 안경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안경 제작에는 그리 높은 비용이 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대량 생산이 가능한 데다 대부분 플라스틱인 안경에 드는 재료값도 비싸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테크크런치와의 인터뷰에서 “안경값이 왜 아이폰보다 비싸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고 말했다.

안경산업 구조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했다. 안경 가격은 제조 비용의 10~20배에 달했다. 안경 가격이 비싼 이유는 미국에서 두 개의 기업이 안경산업을 독점하다시피한 시장 구조 때문이었다. 유명 안경 판매점 렌즈크래프터에 있는 50여개 브랜드는 모두 한 기업에서 만든 것이었지만 소비자는 알지 못했다.

2008년 어느 날 밤, 블루멘털은 와튼스쿨의 세 친구(데이브 길보아, 앤드루 헌트, 제프리 레이더)에게 메일을 보냈다. 온라인으로 싼 가격에 안경을 판매하자는 것이었다. 안경 가격은 오프라인 매장 판매 가격에서 확 낮춘 95달러였다. 그들 모두는 즉시 “그러자”고 답장을 보냈다. 온라인 안경 판매점인 와비파커의 시작이다. 와비파커라는 이름은 미국 소설가인 잭 케루악의 미발표 소설 주인공인 와비 페퍼와 잭 파커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그는 기업 경영 잡지인 Inc에 “우리는 모두 깨어 있었다”며 “이 아이디어가 정말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당시를 회고했다.

“안경계의 넷플릭스”

안경은 직접 써보고 사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오프라인 매장에서 판매되고 있다. 하지만 와비파커의 기본 아이디어는 온라인으로 안경을 판다는 것이었다. 판매 방법은 다음과 같다.

소비자가 와비파커 홈페이지에서 마음에 드는 안경을 최대 5개까지 고르면 집으로 택배가 배송된다. 소비자는 3~5일 동안 안경을 써보고 홈페이지에서 마음에 드는 안경을 선택한다. 시력과 눈 사이 거리 등 기본 정보도 같이 입력해야 한다. 소비자는 5개의 안경 모두를 다시 와비파커로 반송한다. 2주 뒤 소비자는 맞춤 제작된 안경을 택배로 받아 볼 수 있다. 판매 과정에서 드는 세 번의 택배비는 와비파커가 부담한다.

이 과정에서 소비자는 오랜 시간 자신에게 맞는 안경이 무엇인지 고민해볼 수 있다. 와비파커 측은 “다른 쇼핑몰이 ‘지금 당장’ 물건을 사도록 유도하지만 와비파커는 심사숙고한 뒤 결정할 수 있게 한 것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정말 가능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혁신적이다.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늘 그렇듯 시작은 쉽지 않았다. 블루멘털은 그랜트 교수에게 투자 제안을 했지만 거절당했다. 이후 그들은 와튼스쿨의 벤처창업프로그램(VIP)에 참여해 2500달러의 초기 창업자금으로 기업을 설립했다. 창업에 충분한 금액은 아니었다.

공동 창업자인 길보아는 미국 일간지 데일리캘리포니언과의 인터뷰에서 “적은 자금을 딱 세 군데에 집중 투자해야 했다”고 밝혔다. 이들이 투자한 세 가지는 기술인력과 물품 목록, 패션잡지 홍보인력이었다. 온라인 기반 사업인 만큼 홈페이지를 제작할 전문 기술인력이 필요했고, 같은 이유로 물품 목록도 중요했다. 그들은 여기에 패션잡지 보그나 남성잡지 지큐(GQ)에 제품을 알릴 패션 홍보 담당자를 고용했다. 이 전략은 성공했다.

하루는 홍보 담당자가 그들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그는 “내일 GQ에 우리 기사가 나갈 테니 사이트를 어서 정비하라”고 했다. 당시 그들은 웹사이트조차 제대로 마련하지 못한 상태였다. 다음날 공개된 기사에서 GQ는 와비파커를 “안경계의 넷플릭스”라며 혁신의 대명사로 꼽히는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 넷플릭스에 비유했다. 안경이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했다. 온라인으로 시작한 이 기업은 현재 30여개 오프라인 매장을 가지고 있고 뉴욕에 자체 연구소를 세울 예정이다.

‘1+1 기부’로 사회 환원

블루멘털의 친조부와 외조부는 모두 사업가였다. 그 덕인지 그는 8살에 말린 과일을 파는 사업을 구상했지만 이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가 남다른 사업가 기질을 가졌다는 사실을 증명하기엔 충분했다.

그가 다른 사업가와 다른 점이 있다면 사회적 영향을 고려한다는 것이다. 블루멘털은 포브스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영향력에 관심을 갖는다”며 “좋은 의도가 기대치 않은 결과를 만들어낸다”고 말했다. 그는 “안경 가격을 낮추면 안경이 필요한 사람이 안경을 가질 수 있고 직업을 창출하는 등 복합적인 효과를 가져온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사회적 기업 인증인 ‘비코프(B Corp)’를 받은 1+1 기부(buy one, give one)를 실천하고 있다. 신발 브랜드인 ‘탐스(TOMS)’가 최초로 도입한 이 방식은 소비자가 구입한 제품 하나당 제품 한 개를 기부한다. 와비파커는 또 저개발 국가에 시력 측정 기술을 전수하는 등의 활동도 하고 있다.

홍윤정 기자 yj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