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브렉시트 파장] "구조조정 태풍 최소 3년 이어진다…자금경색 확산 우려"
국민 신한 우리 KEB하나 농협 등 5대 주요 은행 최고리스크책임자(CRO)는 조선·해운 등 취약업종 구조조정 태풍이 최소 3년은 이어질 수 있다며 이렇게 되면 정상 기업까지 자금 경색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장기화한 글로벌 실물경기 침체로 취약업종의 빠른 업황 개선을 기대하기 힘든 가운데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결정의 후폭풍으로 금융시장 불확실성이 커짐에 따라 자산 매각 등에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5대 은행 CRO는 3일 ‘브렉시트 결정 이후 조선·해운 등 취약업종 구조조정 전망’에 대한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은행의 건전성·수익성 부문의 장단기 리스크 요인을 파악하고 총괄하는 은행 CRO는 국내 주요 기업의 재무·경영 상황을 면밀하게 관찰하는 것은 물론 산업 전반에 대한 분석을 은행 경영 전략과 영업 정책에 종합적으로 반영하는 전문가다. 기업 구조조정이 본격화하고 국내외 금융시장과 실물경기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건전성 관리와 자산 포트폴리오 조정을 위한 CRO의 역할은 더 중요해진다.

◆“구조조정 태풍 최소 3년은 분다”

CRO들은 취약업종 구조조정 태풍이 최소 3년은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A은행 CRO는 “브렉시트 충격이 금융시장의 장기 불확실성을 증대시키면서 실물경기 침체와 맞물리면 기업·산업 구조조정 태풍이 최소 3년, 길게는 5년까지도 이어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구조조정에 따른 실업 문제가 가계대출 부실화 등으로 이어지지 않을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덧붙였다.

CRO들은 또 “가장 큰 우려는 단순한 기업 재무상태 악화가 아니라 저성장·고령화로 갈수록 경제 활력이 떨어지고 산업 및 시장 예측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이라며 “이런 환경에서 기업·산업 구조조정은 일시적 프로그램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재”라는 의견을 나타냈다.

◆조선·해운 자구 노력 더 필요

취약업종 구조조정의 속도를 높여야 한다는 주문도 많았다. CRO들은 취약업종에 속한 기업 구조조정이 속도감 있게 이뤄져야 다른 정상 기업이 자금경색에 따른 피해를 겪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B은행 CRO는 “기업 구조조정의 핵심은 속도”라며 “막연하게 경기 회복을 기대하고 대처를 늦추면 오히려 산업 전반의 피해만 확대된다”고 말했다.

CRO들은 과거 일본의 구조조정 실기(失機) 사례를 염두에 둬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일본에서도 과당경쟁 및 공급과잉 업종에 대한 수술을 미루다 경쟁력을 잃은 산업 분야가 적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조선 ‘빅3’가 채권단에 제출한 구조조정 자구안은 위기 타개를 위한 최소한의 수준일 뿐이라는 의견도 밝혔다.

C은행 CRO는 “국제 유가 하락과 세계경제 둔화, 중국 업체와 경쟁 격화라는 구조적인 난관도 헤쳐나가기 어려운데 브렉시트 결정으로 불확실성이 더 커진 만큼 조선·해운업 모두 추가적인 타격이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철강·석유화학도 안심 못 해

조선·해운업에 이어 구조조정이 본격화할 업종으로는 철강·석유화학을 꼽는 CRO가 많았다. D은행 CRO는 “철강은 조선, 자동차 등 전방산업의 수요 부진과 중국 기업들의 과당 가격경쟁으로 수익성이 빠르게 나빠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또 “석유화학 분야에서도 중국발(發) 공급과잉으로 합성수지, 합성원료, 합성고무 등까지 구조조정 품목이 확대돼 주요 업체의 사업 재편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 전자부품업을 우려하는 의견도 있었다. 휴대폰 가전 등 전방산업 부진으로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면 소규모 업체의 부실화가 가시화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5대 은행 CRO는 취약업종을 중심으로 이미 대기업 여신 비중을 줄이고 있다고 밝혔다. C은행 CRO는 “대기업 여신은 덩치만 클 뿐 수익성에 도움이 안 된다”며 “한도를 축소하고 우량 신용등급 위주로 운용하는 등 대기업 여신 취급 기준이 강화됐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부실률과 연체율이 낮고 부실화돼도 충당금 부담이 덜한 소호대출(개인사업자 대출)을 늘려갈 계획”이라고 전했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