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플러와 한국경제신문의 '각별한 인연'
“세계적 경쟁이 심해지는 지식기반경제에서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혁신이 필요하다. 지속적인 혁신을 위해서는 개개인의 혁신을 억압하는 관료적 조직과 정보시스템, 권위적 구조 등을 모든 경제 사회 제도로부터 제거해야 한다.”

앨빈 토플러 박사가 2001년 한국 정부를 위해 작성한 연구보고서 ‘위기를 넘어서-한국의 21세기 비전’의 결론 부분에 담긴 한 구절이다. 토플러 박사는 당시 외환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던 김대중 정부의 ‘조언자’ 역할을 맡아 이 보고서를 작성했다. 그는 보고서를 통해 “지식기반경제라는 선진 경제에 한국이 참여할 것을 강력히 권고한다”고 조언했다.

토플러 박사는 생전 한국과 각별한 인연을 맺었다. 1990년대 초반부터 한국을 자주 방문해 한국의 급속한 발전상을 지켜보면서 미래 경제 외교 노동 국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

토플러 박사와 한국을 연결한 고리는 한국경제신문이었다. 1980년대 말까지만 해도 토플러 박사는 한국과 한국인을 싫어한다고 공공연히 얘기하고 다녔다. 한국에서 자신의 책들이 저자 허락 없이 해적판으로 유통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해적판 유통을 용인하는 국가와 국민은 ‘지식 야만인’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고 한다.

한경은 토플러 박사와 정식 계약을 맺고 1989년부터 한국어판 서적을 잇따라 출간했다. 《미래쇼크(Future Shock)》와 《제3의 물결(The Third Wave)》 한국어판이 1989년 11월 나왔고, 1990년 11월에는 영문판과 거의 동시에 《권력이동(Powershift)》 한국어판이 출간됐다. 토플러 박사의 3대 대표 저서로 꼽히는 이들 서적은 그동안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았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미래쇼크》는 9만9500부, 《제3의 물결》은 16만8000부, 《권력이동》은 34만4000부 판매됐다.

토플러 박사는 2000년대 초반 이들 책에 대한 한국어판 독점 출판 권리를 평생 보장하겠다고 한경에 약속하기도 했다. 한경을 통해 자신의 사상과 철학이 한국에 널리 알려진 데 대한 고마움의 표시였다. 한경은 출판 외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토플러 박사와 깊은 유대관계를 맺어왔다. 한국에 토플러 박사를 처음 초청해 그가 우리나라와 인연을 맺는 계기를 마련했다.

《권력이동》 한국어판 출간을 앞두고 있던 1990년엔 토플러 박사가 한경에 20여회에 걸쳐 글을 쓰기도 했다. 당시 진행 중이던 동유럽과 옛 소련의 대변혁, 미국·일본·유럽 간의 치열한 쟁투 등 《권력이동》에 담을 내용을 한경 지면에 먼저 공개했다. 토플러 박사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경과의 단독 인터뷰를 통해 한국이 나아갈 길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이상열 기자 mustaf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