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선하고 아름다운 인간관계에서 오는게 행복"
“행복은 선하고 아름다운 인간관계에서 옵니다. 인간관계가 잘못되고 깨지면 불행과 고통만 오죠. 증오하고, 미워하고, 질투하고, 다른 사람이 잘못되길 원하는 사람이 행복해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내가 누군가로부터 얼마나 많이 받았느냐’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얼마나 많이 주었느냐’가 행복을 결정합니다.”

100세를 앞둔 노학자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97·사진)는 지난 28일 서울 수유동 강북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강북구 행복나눔 콘서트-우리는 무엇으로 행복해지나’에서 500여명의 청중 앞에 서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끝까지 일할 수 있는 사람은 늙지 않는다”며 “내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이라면 그게 내 돈을 써야 하는 일이라 해도 기꺼이 하기에 지금도 전국을 다니며 이야기를 전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행사는 서울 강북구청과 렛츠런강북문화공감센터, 참행복나눔운동, 온북TV, 한경BP 공동 주최로 열렸다.

최근 한경BP가 펴낸 《우리는 무엇으로 행복해지나》의 공동저자인 김 명예교수는 나이를 무색게 하는 열정적인 태도로 행사 참석자들을 감동시켰다. 강의 내내 서서 이야기했다. 지팡이도, 보청기도 없었다. 목소리만 들어선 나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발음과 발성이 정확했다.

일본 조치대 철학과를 졸업한 김 명예교수는 연세대에서 30여년간 철학과 교수로 활동했으며, 미국 시카고대와 하버드대 연구교환교수를 지냈다. 1960년대부터 《고독이라는 병》과 《영원과 사랑의 대화》 등 많은 수필집을 출간해 대중적 사랑을 받은 스테디셀러 작가이기도 하다. 이날 행사엔 70세 생일을 맞은 한 강북구민이 참석해 “10대 소녀 시절 김 교수의 수필을 읽고 깊은 감동을 받았는데 이렇게 직접 보게 돼 영광”이라며 “아직도 내 마음이 소녀 같다는 걸 느꼈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김 명예교수는 세월이 지나며 달라져 가는 사랑의 모습에 대해서도 논했다. 그는 “젊을 땐 연정, 결혼하면 애정, 늙으면 인간애를 갖고 산다”며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사람을 사랑해야 행복한 삶”이라고 말했다. 13년 전 아내와 사별한 뒤의 슬픔을 담담히 털어놓기도 했다. “일이 많고, 다른 가족과 친구들도 있으니 괜찮을 것이다 싶었는데 그래도 혼자 남는 건 정말 힘든 것 같아요. 아내가 병석에 있을 땐 출장 갈 일이 있어도 얼른 집에 와야겠다 생각했는데, 이젠 집이 비어서 집에 가고 싶단 생각이 별로 안 들어요. 남자는 어머니의 사랑과 아내의 사랑으로 행복해진다고 하는데 난 다 가 버렸네요. 슬픔을 열심히 이기려 하고 있어요. 지금도 할 일이 많으니까요.”

그는 “다시 교단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학생들을 좀 더 많이 사랑해주고 싶다”며 “내가 준 사랑보다 제자들이 내게 준 사랑이 훨씬 많다”고 했다. 이른바 ‘사회 지도층’에게도 일침을 놓았다. “정치인은 국민을 위해 눈물을 흘려봐야 진짜 정치인이고, 의사는 환자를 사랑해야 진짜 의사입니다. 교수나 목사는 다른 욕심은 별로 없는 것 같지만 명예욕이 너무 강해요. 사랑이 없는 인생은 고해(苦海)와 같지만, 사랑이 있는 인생은 행복합니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