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경제정책(아베노믹스)까지 뒤흔들고 있다. 엔화 약세로 인한 기업실적 개선을 통해 경기를 부양하려는 구상이 엔화 초강세라는 브렉시트 충격파를 만난 것이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일본은행은 임시 금융정책결정회의를 열어 추가 양적 완화에 나설 전망이다.
[브렉시트 쇼크] 물거품 된 아베노믹스…일본, 브레이크 없는 엔고에 '디플레 공포'
○엔고(高)에 노심초사

24일 도쿄외환시장에서 엔화 가치는 장중 달러당 99엔까지 치솟았다. 2013년 11월 이후 2년7개월 만에 최고다. 이날 하루에만 3엔가량 올랐다. 올 들어서는 17.8% 급등했다. 일본은행이 지난 3년여간 240조엔(약 2700조원)을 쏟아부으며 엔저(低)를 유도했지만 브렉시트 ‘한 방’에 물거품이 됐다. 엔고에 따른 기업실적 악화 우려는 닛케이225지수 급락으로 이어졌다. 닛케이225지수는 7.92% 내린 14,952.02에 마감했다. 2014년 10월21일 이후 1년8개월 만에 최저다. 하락폭은 2000년 4월17일 이후 16년2개월 만에 최대다.

엔고와 증시 급락은 개인소비와 기업 투자심리를 얼어붙게 할 가능성이 있다. 지난 13일 나온 2분기 대기업 경기상황판단지수는 4년 만에 두 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1분기 일본 국내총생산(GDP)이 증가세로 돌아서긴 했지만 2분기 개인소비와 수출에 급제동이 걸리면서 일본 경제가 또다시 뒷걸음질칠 가능성이 커졌다.

○英 진출 기업에 직격탄

영국에 유럽지역본부나 생산거점을 두고 EU 시장을 공략하는 일본 기업이 많다. 히타치제작소는 지난해 9월 뉴턴 아이클리프에 8200만파운드를 투자해 고속철도차량 공장을 건설했다. 도요타자동차는 영국 중부 더비 공장에서 연간 19만대를 생산해 이 중 75% 정도를 유럽 국가로 수출하고 있다. 닛산자동차는 선더랜드, 혼다도 스윈던에서 생산한 차량을 EU에 공급하고 있다.

영국과 EU 간 새로운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되지 않으면 이들 일본 기업의 가격경쟁력 약화는 불가피하다. 영국에서 EU로 수출하는 제품은 관세 10%를 물어야 한다.

영국에서 정보기술(IT) 서비스사업의 핵심 거점을 운영하는 후지쓰도 EU로의 인력 이동이 제한되면 사업이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 이시하라 노부테루 경제재정·재생담당상은 “경제재정자문회의를 열어 정부 차원에서 대응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소 부총리, 구두 개입

전문가들은 일본은행이 추가 양적 완화에 나설 것으로 관측했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는 16일 현행 양적 완화 유지를 결정하면서 “추가 금융완화를 할 준비는 언제든 돼 있다”고 말했다.

임시회의가 열릴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엔고가 가속화하는 상황에 다음달 28~29일 정례 금융정책결정회의 때까지 기다릴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구로다 총재는 28일까지 스위스에서 열리는 국제결제은행(BIS) 회의에 참석할 예정이다. 임시회의가 열린다면 그 시기는 다음달 초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일본 재무성이 직접 외환시장 개입에 나설 수도 있다.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상은 “외환시장 동향을 긴장감을 갖고 주시하겠다”며 “필요한 때 제대로 대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엔화 가치가 급등할 때마다 ‘립서비스’를 해 왔다. 엔화 가치가 달러당 100엔 위로 오른 이상 행동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미국의 견제가 있을 가능성이 있지만 엔화 가치가 고평가 상태에 접어든 이상 시장개입 명분이 생겼다고 시장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아소 재무상은 이날 시장개입 여부에 대한 질문에 “코멘트 할 것은 없다”고 말을 아꼈다.

■ 240조엔(약 2700조원)

일본은행이 양적 완화를 시행한 2013년 4월부터 지난 5월까지 공급한 자금. 일본은행은 돈을 풀어 엔저를 유도하는 식으로 경기를 부양했다. 그러나 브렉시트로 24일 엔화 가치는 2년7개월 만의 최고로 치솟았다.

도쿄=서정환 특파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