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손절매, 구조조정의 한 원칙
미식축구를 보면 수비진과 공격진이 완전히 따로 구분돼 있다. A팀 공격진이 공격할 때는 상대방인 B팀 수비진이 수비를 한다. B팀 공격 차례가 되면 B팀 수비진은 안으로 들어오고 B팀 공격진이 투입돼 A팀 수비진과 대결을 벌인다. 수비진은 수비만 하고 공격진은 공격만 하는 철저한 분업 구조가 매우 흥미로운 경기 흐름을 만들어 낸다.

기업은 자본과 부채를 통해 조달한 자금으로 자산을 구축, 이익을 내는 것을 목적으로 움직이는 조직이다. 자산 포트폴리오를 적절히 구축해 계속 사업을 벌이면서 이익을 내는 것은 거의 예술 수준으로 어려운 작업이다. 경제 상황을 잘 들여다보면서 기존 사업을 영위하는 동시에 적절한 때가 오면 신규 사업 기회를 포착해 새로운 자산을 만들면서 기업 가치를 제고하는 작업은 실로 어려운 일이다.

이처럼 기업을 키우는 데는 다분히 공격수적인 마인드가 필수적이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면서 새로운 기회를 포착하는 데는 맹수 같은 동물적 본능까지도 필요하다. 그런데 사업을 지속하다 보면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기면서 조정이 필요한 상황이 올 수 있다. 그리고 기존 자산을 조정하거나 몸집을 줄이는 데도 자산을 키우는 것 못지않은 상당한 노하우와 기술이 필요하다. 물론 이런 축소지향적 작업을 위해서는 수비수적인 마인드가 필수적이다.

우리 경제가 급속도로 저성장기로 접어들면서 구조조정의 필요성이 상당 부분 커지고 있다. 그런데 기업 경영진 중에는 공격에 성공한 추억을 떠올리면서 공격수적인 마인드를 유지하는 사례가 아직도 많다. 자신이 키운 기업을 자식처럼 생각하는 것도 문제다. 성공적으로 조직을 키워낸 경험을 토대로 낙관적인 사고를 하면서 조금 더 버티면 좋은 날이 다시 올 것이라고 굳게 믿으며 기존 구조를 붙잡고 놓지 않는 마인드가 구조조정에 걸림돌이 된다.

공격할 생각만 해서는 경기에서 이길 수 없는데도 공격수 마인드로 이미 기울어진 기업에 유동성 지원만 해주면 살아날 수 있다고 주장해서는 저성장 시대를 헤쳐 나갈 수 없다. 이렇게 되면 기업이 완전히 망할 때까지 붙잡고 있다가 청산하는 수밖에 없다. 안 좋아진다고 판단이 될 때, 아직 기업이 살아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때 과감히 수비수에게 역할을 넘기는 것이 훨씬 낫다.

각종 사모펀드(PEF)나 헤지펀드, 구조조정 전문조직 등이 수비수 역할을 잘할 수 있다. 하지만 그동안 우리 경제는 공격수 마인드가 충만하다 보니 수비수를 잘 키우지 못했다. 또 상황이 어려워지면 산업은행 같은 국책은행들이 긴급 유동성을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회생 가능성이 높아진 경험이 축적돼 왔다. 이러다 보니 굳이 수비수를 키울 유인이 적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산업은행 중심의 구조조정 모형 자체도 구조조정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또 기업은 ‘자식’이 아니라 ‘주식’이라고 생각하면서 가격이 떨어질 때 과감하게 손절매할 수 있는 마인드도 필요한 시대다. 적절하게 손절매를 해야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다. 한 종목으로 승부를 걸려다가 기회를 놓치면 추가적인 기회는 다시 없다.

잭 웰치 GE 회장은 자회사들을 일종의 도구로 보고 자회사를 잘 관리해 모회사 가치를 제고하는 데 충실한 경영자였다. 자회사는 모회사의 가치 제고를 위한 수단이었다. 조금이라도 실적이 안 좋아지면 이를 사겠다는 고객이 있을 때 가차 없이 자회사를 팔고, 이 돈으로 더 좋은 자회사에 투자함으로써 모회사 주주들의 이익에 철저하게 봉사한 경영자였다.

저성장이자 구조조정의 시대가 도래한 지금 우리 경제는 수비수를 육성하고 더욱 키우는 작업을 지속해야 한다. 또 국책은행 중심 구조조정 모형에 대해서도 대안을 찾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는 동시에 회사는 자식이 아니라 주식이라는 마인드도 가져야 한다. 많은 노력을 통해 한국 경제가 어려운 상황을 잘 헤쳐 나가 새로운 모습으로 더 좋은 기회를 찾게 되기를 비는 마음 간절하다.

윤창현 < 서울시립대 교수·공적자금관리위 민간위원장 chyun3344@daum.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