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합 합의만 했어도 처벌 가능"…공정위, 채권평가사 3곳 제재
한국자산평가 등 채권평가사 세 곳이 자산운용사에 무료로 제공하는 ‘파생상품 사전평가보고서’를 유료로 전환하기로 담합했다가 적발돼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시정명령을 받았다. 채권평가사들은 자산운용사에서 불이익을 받을 것을 우려해 실제 유료화하지는 않았지만 공정위는 담합 의도만 있어도 제재가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20일 공정위에 따르면 지난달 19일 열린 공정위 제1소회의는 한국자산평가 키스채권평가 나이스피앤아이 등 채권평가사 세 곳이 공정거래법 19조의 ‘부당한 공동행위(담합) 금지’ 조항을 위반했다고 결론내리고 시정명령을 내렸다. 소회의는 채권평가사 세 곳이 자산운용사에 제공하는 ‘파생상품 사전평가보고서’ 가격을 담합했다고 판단했다. 소회의는 공정위 상임위원(1급) 2명과 비상임위원 1명으로 구성된 합의체로 1심 법원 역할을 한다.

이들 채권평가사는 2000년부터 펀드를 운용하는 자산운용사에 파생상품 사전평가보고서를 무료로 제공해왔다. 당시 금융감독당국이 펀드의 파생상품 투자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자산운용사에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요구하자 자산운용사들이 채권평가사에 보고서 작성 업무를 맡겼다.

채권평가사들은 2011년부터 서비스 대가를 받기로 마음먹었다. 무료로 계속 보고서를 제공하기엔 업무 부담이 컸기 때문이다. 채권평가사 관계자들은 2011년 12월 서울 여의도 한 카페에 모여 보고서 건당 5만원을 받기로 합의했다. 공정위 조사관들은 채권평가사 대상 직권조사 과정에서 2011년 합의 내용과 관련한 한국자산평가 내부 문건을 확보하고 다른 회사 관계자로부터 자백을 받았다.

담합은 끝내 실행하지 못했다. 자산운용사들과 맺은 다른 서비스 계약에서 불이익을 받을 것을 염려해 채권평가사 스스로 유료화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공정위는 채권평가사들이 보고서 건당 5만원씩 유료화하기로 합의한 것은 공정거래법 19조에서 금지하는 ‘합의’와 ‘경쟁제한’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공정위는 “법 위반 행위는 심의 당시 종료됐지만 가까운 장래에 동일한 행위가 반복될 우려가 있어 시정명령을 부과한다”고 밝혔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