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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숨은 경제이야기] 제프리 초서의 영어 표준화는 화폐처럼 받아들여져

입력 2016-06-17 16:47:00 | 수정 2016-06-17 16:48:07 | 지면정보 2016-06-20 S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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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호 KDI 전문연구원
영문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 중에는 제프리 초서(Geoffrey Chaucer·1342~1400)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는 ‘영시의 아버지’이자 영문학의 아버지로 칭송되고 있다. 하지만 초서가 인정받는 부분은 단순히 ‘최초’라는 수식어 때문만은 아니며, 그의 문학 작품의 예술성과 작품성뿐만 아니라 오락성 부분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영문학을 전공하는 사람은 흔히 고대 영문학 작품인 ‘베어울프’를 억지로 읽고 학위를 받을 바에야,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그의 작품은 아직까지도 설득력 있는 내용들로 구성돼 있다. 영문학에서 초서에 비견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은 셰익스피어가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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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서가 남다른 평가를 받아야 할 이유는 문학사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언어적인 측면에서도 충분하다. 초서는 지금은 만국 공용어가 된 영어가 제대로 된 언어 체계를 갖출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준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기 때문이다. 저명한 역사 저널리스트 폴 존슨 역시 초서의 이러한 업적에 주목하여 초서만큼 문자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사람은 일찍이 없었다고 칭송한 바 있다.

초서 이전의 영어는 통일된 체계를 가진 많은 사람이 즐겨 사용하는 음성을 언어로 표기한 문자라고 보기 어려웠다. 초서 이전에는 성직자를 비롯한 상류층의 영어와 일반 국민이 사용하는 영어가 명확히 구분되어 있었으며, 지역마다 사용하는 영어 역시 상이하였다.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분명한 영어권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의사소통이 사실상 어려운 상황이 대부분이었다. 또한 지역마다 특정 언어를 표기하는 방법이 서로 상이하였다. 상당수 지배층에선 글을 써야 할 때는 라틴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영국 국왕인 에드워드 1세와 2세는 영어로 글을 쓴 기록이 전혀 남아 있지 않다. 이러한 사실을 바탕으로 역사학자들은 이들이 영어를 아예 사용할 줄 몰랐을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처럼 초서 이전 영어는 단일 언어도 아니었으며, 많은 사람이 사용하는 문자도 아니었다.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자연스런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도대체 일개 개인에 불과한 초서가 어떻게 문학작품을 통해서 수세기를 걸쳐 진화해 온 언어 체계를 바로잡을 수 있었으며, 더군다나 많은 사람이 즐겨 사용하는 언어로 탈바꿈시킬 수 있었을까 하는 점이다. 정말 그의 작품의 예술적 감수성과 인간적 호소력이 그처럼 높았기에 영어라는 언어의 본격적인 출범을 이끌어 낸 것인가?

정답은 초서 혼자의 힘만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어떤 언어가 얼마나 활발히 특정 지역 내지 국가에서 사용되느냐는 해당 언어의 완성도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해결해야 할 여러 전제조건이 있는데, 이는 화폐의 원활한 거래에 필요한 전제조건과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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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호 KDI 전문연구원

특정 화폐가 특정 국가 내지 지역에서 원활히 거래되기 위해서는 해당 화폐가 교환의 매개수단이자 회계의 단위이자 가치의 저장수단으로서의 기능을 갖추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교환의 매개수단이라는 것은 내가 무언가를 사거나 팔 때 해당 화폐를 제시했을 때 상대로 하여금 수용 가능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거래 과정에서 상대방이 화폐로 인정하지 않는 화폐란 더 이상 화폐로서의 가치가 없다. 언어와 문자 역시 마찬가지이다.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인식하고 수용 가능한 형태로 구사되어야 한다.

다음으로 화폐로서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해당 화폐가 회계 단위 내지 가치 저장 수단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화폐를 통해서 경제적 가치를 측정할 수 있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언어 내지 문자로서 순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해당 문자를 사용한 사람과 수용한 사람들 간에 동일한 의미와 내용으로 해당 문자를 인식해야 한다. 따라서 문자와 언어를 원활히 사용하기 위해서는 표준화가 필요하다.

영국 역사를 보면 초서가 등장하기 이전부터 영어에 대한 저변을 확보하기 위한 환경이 조금씩 싹트고 있었다. 초서가 본격적인 활동을 하기 시작하기 전인 1312년에 태어난 에드워드 3세는 영어를 유창하게 사용한 기록이 많다. 이는 이전의 왕들과는 다른 모습이다.

또한 국가의 공식적인 사용 언어 역시 영어를 사용해 법률과 행정 처리를 진행하기 시작하였다. 1362년 발표된 ‘소송 절차에 관한 법규(the Statue of Pleading)’는 영어로 표기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해당 법규에는 앞으로 진행될 모든 법정 과정은 영어만을 사용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지배층 이외의 일반인 사이에서도 영어를 접할 기회는 급격히 증가하던 시기였다. 영국의 대표적 명문대학인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대학은 수십 개의 칼리지를 설립하여 고등교육을 보편화하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하였고, 초서가 활동하던 시기에 가장 두각을 나타내던 회사는 서점과 인쇄제작업이었다. 당시 런던에서만 200여개의 출판 관련 회사가 존재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며, 많은 문서를 작성하고 베끼는 사람을 뜻하는 신종 직업을 가르치는 언어인 ‘서기(clerk)’라는 단어도 나타났다.

초서 등장 이전 혹은 등장과 함께 당시 영국 사회는 영어를 받아들일 수 있는 여러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었다. 그러한 상황이 있었기에 초서의 빛나는 문학작품을 많은 사람이 수용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요인이 있었다고 해서 영문학을 꽃피운 초서의 업적을 폄하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것은 초서의 작품에 투영된 작품의 구성과 표현 방식은 초서 이전과는 분명히 구분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영문학은 프랑스 문학이나 이탈리아의 문학에 비해 뒤처진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런데 초서는 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에 유창했을 뿐만 아니라 독일어, 스페인어도 어느 정도 구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국어에 능통한 초서가 여러 국가의 우수한 문학작품을 읽고 각각이 내포하고 있는 우수성을 자신의 작품에 투영하려고 시도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이는 그의 첫 작품에도 잘 드러난다. 그의 첫 걸작인 ‘공작 부인의 책(The Book of the Duchess)’은 당시 프랑스에서 유행하던 꿈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는 기법을 활용하였다. 이러한 시도는 이전 영국 문학계에서는 시도된 바 없는 형태였다. 이 밖에도 초서는 자신의 작품 구조와 운율에 이탈리아어의 형태를 차용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초서의 시도와 노력들은 영어를 여타 유럽의 언어만큼 풍성하면서 입체적인 언어로 사용하는 모범답안을 많은 사람에게 제시해 준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 어쩌면 당시 많은 영국인은 당대 최고의 베스트셀러인 초서의 작품을 읽으면서 자신들의 언어이자 문자인 영어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에 대해 학습한지도 모를 일이다.

박정호 KDI 전문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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