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워털루 데이
201년 전 6월18일. 벨기에의 워털루 벌판에서 나폴레옹의 프랑스군(12만4000여명)과 영국 웰링턴 장군이 이끄는 연합군(9만5000여명)이 맞붙었다. 프로이센군(12만3000여명)도 연합군에 가세했다. 34만여명이 벌인 이날 전투에서 나폴레옹은 참패했다. 영국이 프랑스를 누르고 유럽의 새 역사를 쓰는 순간이었다.

영국은 이날을 ‘워털루 데이’로 정해 해마다 기념하고 있다. 그런데 올해 워털루 데이는 예년과 사뭇 다르다. 영국이 유럽 대륙 전체와 맞붙어 또 다른 전쟁을 치르는 분위기다. 프랑스와 독일이 주도하는 EU(유럽연합)에서 탈퇴해 독자노선을 걷겠다는 이른바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전쟁’이다.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EU본부는 제2의 워털루 벌판이 됐다.

전운은 전 유럽을 덮고 있다. 나라마다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당사국인 영국의 속내는 더욱 복잡하다. 눈앞의 경제 문제부터 대륙과의 오랜 앙금 등 국민정서까지 맞물려 있다. 처음에는 미온적이던 영국인들이 국민투표(23일)를 앞두고는 탈퇴 쪽으로 기울고 있다. 탈퇴론의 명분인 지나친 규제, 일자리 부족, 재정 악화 등에 공감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전기주전자 논란’도 한몫했다. 올초 EU가 전기 사용량이 많은 가전제품 사용을 규제하려 하자 차를 즐겨 마시는 영국인들이 격분한 것이다. EU로서는 여러 나라가 모인 만큼 규칙을 세세하게 정해놓고 엄격하게 적용해야 시스템이 돌아간다고 보지만, 영국인에겐 이것이 쓸데없고 불필요한 규제로 여겨진다. 의회제도를 만들고 민주주의를 꽃피운 영국으로서는 ‘각종 규제와 무능한 관료로 가득찬 사회주의적 집단’이 못마땅하다.

EU 재정에 대한 불만도 크다. 영국이 독일, 프랑스보다 더 많은 분담금을 내는데 대접은 형편없다는 것이다. 차라리 EU 탈퇴로 자유무역협정이나 테러정보 공유 등에서 외톨이가 되고 국민소득이 줄어도 상관없다고 말한다. 그 저변에는 뿌리깊은 반유럽 정서와 국민적 우월성이 깔려 있다. 영국인과 유럽 민족들은 근본적으로 다른 체제와 뿌리를 갖고 있으니 둘이 손을 잡는 게 처음부터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워털루 전투 이전에 벌써 정치적 권력남용을 경계한 에드먼드 버크의 철학을 공유한 영국이다. 현직 법무장관인 마이클 고브 등 보수파가 ‘유럽연합 회원국으로 계속 남게 되면 우리 삶의 중요한 결정을 선택할 권리가 없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201년 전 워털루에서처럼 이번에도 영국이 승리할지 궁금하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