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국 기업의 경쟁력을 한눈에 보여주는 게 미국 포천지가 선정하는 ‘글로벌 500대 기업’이다. 매출액 순위로 500위 기업까지 뽑는 이 리스트에 드는 한국 기업 숫자는 수년째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2009년 14개사에서 지난해 17개사로 6년간 3개사가 늘었을 뿐이다.
중국보다 센 고용규제, 일본보다 약한 경영권 보호…성장 못하는 기업
하지만 중국 기업들은 매년 10개사 이상씩 늘어 같은 기간 37개사에서 98개사로 증가했다. 리스트에 든 기업 중 ‘창업 15년 이하’인 젊은 기업을 꼽으면 한국은 한 곳도 없지만, 중국은 26개사에 달한다. 한국은 기업이 클 수 없지만, 중국은 급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돼 있기 때문이란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고령화 등으로 한국 경제의 성장이 멈춘 탓도 있지만 고용과 공정거래, 지배구조 등에 걸친 규제 탓에 기업 성장이 막혀 있는 게 가장 큰 요인이라고 지적한다. 한국경제신문이 기업 경영과 관련된 국내 대표적 규제 24개를 중국 일본과 비교 분석한 결과, 9개 규제는 한국에만 있었고 또 다른 9개는 중국 일본 중 한 곳에만 있었다.
중국보다 센 고용규제, 일본보다 약한 경영권 보호…성장 못하는 기업
◆중국보다 강한 노동 규제

고용과 관련된 규제는 채용부터 시작된다. 한국에선 직원을 채용할 때 신원 조사하는 게 금지돼 있다. 중국과 일본은 허용한다. 또 한국 제조업체는 기존 근로자의 출산 질병 부상 등 예외적 경우를 제외하고는 근로자를 다른 곳에서 파견받아 쓸 수 없다. 하지만 중국은 임시적이고 보조적 업무라면 별다른 제한 없이 파견근로를 허용하고 있다. 일본은 2003년부터 관련 규제를 풀었다.

한국에선 근로자의 초과 근로도 주중 12시간으로 제한하고 있다. 노사가 합의해 시간외근로 시간을 늘리려 해도 늘릴 수 없다. 그러나 중국과 일본의 초과근로 기준은 우리보다 훨씬 유연하다. 노사가 합의하면 늘릴 수 있다.

기간제 근로자의 최대 사용 기간도 중국은 노사 간 자율에 맡기고 있다. 일본은 기본 2년에 재계약 3년까지 최장 5년을 허용한다. 하지만 한국은 최장 2년에 불과하다. 당초 비정규직 근로자를 줄이기 위해 국회가 관련 법을 제정했지만 현장에선 운전기사 비서 경비원 등이 2년마다 직장을 옮겨 다니도록 하는 나쁜 법이 됐다.

단체협약은 중국은 최대 3년, 일본은 3년간 유효하지만 한국에선 2년까지만 유효하다. 노사분규가 더 자주 발생할 수 있다는 뜻이다. 중국에선 노사가 합의하면 단체협약을 종전보다 불리하게 바꾸는 것도 허용한다. 파업하면 일본 기업들은 대체근로자를 쓸 수 있지만 한국은 불가능하다.

◆기업 커지면 규제하는 공정위

한국에서 공정거래위원회의 힘은 막강하다. 매년 자산총액 기준으로 대기업집단을 일괄 지정해 계열사 간 채무보증 및 상호출자, 기업결합 등을 제한한다. 그러다 보니 급성장한 하림 다음카카오 셀트리온 등은 칭찬이 아니라 오히려 규제를 받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중견기업들이 고용을 늘리고 세금을 더 많이 낼 수 있도록 키워야 하지만, 더 크지 못하게 막고 있는 것이다. 김홍국 하림 회장은 한 토론회에서 “35가지의 새로운 규제가 생겨 대기업이 된 것이 달갑지 않다”고 말했다. 이런 비판이 계속 제기되자 공정위는 지난 13일 대기업집단 지정 자산 기준을 현행 5조원에서 10조원으로 올리기로 했다.

대기업은 중국 일본에 없는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로 인해 업종 제한도 받는다. 일본 등 선진국은 중소기업 업종을 지정하기보다 중소기업의 경영을 돕는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은 1959년부터, 중국도 일찌감치 공정거래법에서 동의명령제를 도입했다. 불공정거래 등 위반 혐의가 있어도 중대사안이 아닌 경우 처벌 대신 공정위와 기업 간 합의로 사건을 종료할 수 있다. 한국은 2012년에야 이 제도를 도입했다.

◆지배구조 강화 도와주는 일본

금산분리, 순환출자 금지, 일감몰아주기 등 대기업 지배구조와 관련된 규제는 한국이 사실상 유일하다. 일본은 산업자본의 금융자본 소유를 허용하고 순환출자를 규제하지 않는 등 경제 활성화 차원에서 관련 규제를 풀었다. 중국도 일정한 조건 하에 산업자본의 금융산업 진출을 허용하고 있다.

일본은 오히려 기업 지배구조를 강화해 주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단원주’라는 차등의결권을 가진 주식을 도입해 경영권 방어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신주를 미리 특정인에게 넘겨줄 수 있는 ‘신주예약권’ 제도를 도입해 ‘포이즌필(기존 주주에게 시가보다 싼 가격에 지분을 살 수 있는 권리를 주는 것)’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한국은 둘 다 허용하고 있지 않다.

■ 1만1600개

한국의 직업 수(2011년 기준). 미국(3만개) 일본(1만7000개)에 비해 턱없이 적다. 직업 수는 경제발전 수준과 큰 연관이 있지만 규제 영향도 받는다. 2014년 하우스맥주 외부 판매가 허용되자 브루마스터(brew master)란 직업이 생겨난 게 좋은 사례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