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해운업종 부실을 키웠다는 지적을 받는 산업은행과 한국수출입은행이 정부의 경영평가에서 7년 연속 최상위 등급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 금융당국의 국책은행 감시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부실기업 구조조정이 더뎌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산은·수은, 부실 조선·해운에 22조 물렸는데 경영평가 늘 '최우수' 준 정부
29일 금융권에 따르면 조선·해운업종 부실 경고등이 켜진 2008년 이후 지난해까지 산업은행은 경영평가에서 S등급과 A등급을 번갈아가며 받았다. 수출입은행도 지난해 한 차례 B등급을 받은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A등급 이상이었다. 같은 기간 다른 금융공기업이 대부분 B나 C등급을 받은 것에 비하면 후한 점수다. 특히 2013~2014년은 부실 조선사에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의 대출이 집중적으로 이뤄진 때다. 내부 위험관리는 뒷전이었지만 경영평가에는 반영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조선·해운사의 부실 책임 일부가 국책은행에 있는데도 경영평가에서 최상위 등급을 받고, 해당 기관장이 거액의 성과급을 챙겼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일각에선 정부가 국책은행의 부실 대출을 감시하기는커녕 사실상 방조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두 국책은행이 부실 조선·해운사에 물린 돈만 22조여원에 달한다.
산은·수은, 부실 조선·해운에 22조 물렸는데 경영평가 늘 '최우수' 준 정부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이 구조조정 대상 기업의 부실을 키웠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경영평가 점수가 다른 금융 공기업보다 좋은 것은 허술한 평가시스템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일반적으로 공기업(준정부기관 포함)의 경영평가는 기획재정부가 맡는다. 기재부 산하 공공기관 평가단은 외부 전문가 160여명으로 구성돼 공공기관 평가보고서를 직접 작성하고 등급을 매긴다. 각 기관은 경영 현황과 관련된 기초 정보만 제공하고 평가단이 직접 실사를 통해 검증하는 절차를 거친다. 평가 기준이 엄격하다 보니 A등급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지난해 116개 공공기관 중 45곳(38.7%)에 C등급 이하를 줬다.

반면 산은과 수은은 기타 공공기관이라는 이유로 기재부 평가 대상에서 제외된다. 소관 부처인 금융위원회가 직접 평가한다. 등급을 매기는 주체는 금융위 산하 ‘금융 공공기관 경영예산 심의회’다. 이 심의회는 민간 금융 전문가 10명으로 구성된다. 각 기관이 자체 실적평가 보고서를 올리면 이를 검토해 등급을 정하는 구조다. 정부 관계자는 “기관이 자체 평가한 보고서를 기초로 등급이 정해지다 보니 로비에 취약하고 부실하게 등급이 매겨질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한국경제신문이 입수한 지난해 산은의 자체 평가 보고서를 보면 지난 3년간 5조5000억원 규모의 영업손실을 뒤늦게 고백한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내용은 전혀 없다. 지난 3년간 4조5000억원을 쏟아붓고도 법정관리 절차를 밟게 된 STX조선해양에 대해서는 ‘내실화를 목표로 경영정상화 지원’이라고 쓰여있다. 자화자찬이 대부분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구조조정 문제는 최근에 불거져 그동안 평가에서 크게 반영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전부터 부실 기업 처리에 대한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STX조선은 2013년 막대한 적자를 내고 채권단에 자율협약을 신청했다. 시중은행들이 STX조선 지원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며 올초 채권단에서 빠져나갈 때 산은과 수은은 계속해서 자금을 투입했다.

후한 경영 평가로 국책은행 기관장들의 성과급은 1억원이 넘는다. 지난해 산은 회장과 수은 행장의 성과상여금은 각각 1억8114만원과 1억2680만원에 달한다. 정부 관계자는 “국책은행을 준정부기관으로 지정해 관리를 강화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김주완/김일규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