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시장(왼쪽 세 번째)과 청년 기술창업가들이 지난 22일 종로구 가회동 시장 공관에서 얘기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상환 한국기술벤처재단 창업성장센터장, 이주훈 티알에스 대표, 박 시장, 장상희 더블유에버컴퍼니 대표, 이동학 코코링크 대표, 우종욱 스트롱홀드 대표.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박원순 서울시장(왼쪽 세 번째)과 청년 기술창업가들이 지난 22일 종로구 가회동 시장 공관에서 얘기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상환 한국기술벤처재단 창업성장센터장, 이주훈 티알에스 대표, 박 시장, 장상희 더블유에버컴퍼니 대표, 이동학 코코링크 대표, 우종욱 스트롱홀드 대표.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해부터 기술창업을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위한 ‘서울형 신(新)산업’의 새 모델로 제시하고 있다. 기업가 정신과 앞선 기술을 토대로 탄생한 기술창업 기업이 증가해야 고용을 늘릴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박 시장은 지난 22일 가회동 시장 공관에서 청년 기술창업가 4명과 간담회를 열고 창업단지 조성 및 ‘기술 코디네이터’ 신설 등 기술창업 기업을 위한 지원을 약속했다.

간담회에는 슈퍼컴퓨터 제조업체이자 서울대 기술지주회사 자회사 코코링크의 이동학 대표, 커피 로스팅(생원두를 볶는 기술) 기계를 생산하는 고려대 기술지주회사의 자회사 스트롱홀드 우종욱 대표, 개인 맞춤형 반찬주문서비스 업체 더블유에버컴퍼니의 장상희 대표, 바이오와 접목한 인체 지능형 가방을 생산하는 티알에스의 이주훈 대표가 참석했다. 김상환 한국기술벤처재단 창업성장센터장도 자리를 같이했다.

▷이동학 대표=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성공한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을 보면 고용 인력의 대부분이 박사 출신입니다. 반면 한국은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아 ‘공부 잘한다’는 말을 듣는 사람들이 창업하는 대신 교수가 되려고 하는 게 현실이죠. 실리콘밸리에서도 성공한 스타트업 대표들은 대부분 대학 성적이 상위 10% 안에 드는 유능한 인재입니다. 청년들에게 무작정 창업에 나서라고 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입니다. 실패만 계속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죠. 최소한 대학에서 전공과목을 제대로 공부한 뒤 창업에 도전해야 합니다.

박원순 "스타트업 기술 대신 팔아주는 민간 전문인력 100여명 뽑겠다"
▷김상환 센터장=창업에는 위험이 높은 만큼 수익이 큰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공식이 적용되기 때문에 실패가 뒤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실리콘밸리에서 성공한 기업가들은 평균 네 번가량 실패한다고 합니다. 한국도 창업기업에 대한 투자 환경은 예전보다 좋아졌지만 실패한 창업가에 대한 지원이 거의 없다는 게 문제입니다.

▷박원순 시장=고대 로마시대 때는 전쟁에서 패한 장군은 처벌하지 않고 다음 번 전투에 다시 내보냈다고 합니다. 한 번 실패한 경험을 살려 더 신중한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죠. 서울시가 실패한 창업가만 입주할 수 있는 별도의 공단을 만들겠습니다.

▷우종욱 대표=인력을 채용할 때 고민이 많습니다. 정보기술(IT) 분야 고급 인력은 물론 공장에서 일할 생산직 인력도 필요하기 때문이죠. 어느 곳에 사무실을 둬야 고급 전문인력과 생산 인력을 동시에 뽑을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비용 때문에 사무실을 서울 외곽에 두면 고급 인력을 선발하는 데 애로사항이 많습니다. 그렇다고 사무실과 공장을 분리하면 임차료가 많이 들고 직원 간 소통도 어렵게 되죠.

▷박 시장=중요한 얘기입니다. 주변 환경에 따라 우수 인력 유치의 성패가 갈리게 됩니다. 서울시는 마곡지구와 창동·상계동, 양재·우면동 등지에 ‘서울형 10대 창조경제거점’을 육성할 계획입니다. 한국 최고의 국립대학이자 두뇌집단인 서울대의 한 해 예산이 2조원가량이라고 합니다. 지난달 성낙인 서울대 총장을 만나 서울시와 함께 ‘제2의 서울대’를 설립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양재동과 우면동 일대에 서울시가 보유한 3만3000㎡(약 1만평) 부지와 함께 개발에 따른 공공기여 부지를 더하면 도심 캠퍼스를 조성할 수 있습니다. 미국 뉴욕 루스벨트아일랜드에 코넬대가 코넬텍을 설립한 것처럼 이곳에 대학 캠퍼스가 들어서면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할 수 있을 겁니다.

▷장상희 대표=한국에서는 투자보다 융자 중심의 창업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사회생활에 대해 잘 모르는 어린 학생들이 창업에 도전하면서 빚부터 지게 되는 현실이 안타까웠습니다. 창업에 뜻이 있는 학생들이 직접 기업에 가서 경험해보도록 한 뒤 창업의 길로 유도하는 방안이 필요합니다.

▷박 시장=청년 기술창업가에게 투자하는 펀드가 많아져야 합니다. 구글을 비롯한 외국 기업이 조성한 투자펀드가 서울에 큰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뛰어난 기술을 갖춘 스타트업을 지원하고 이를 토대로 개발한 제품을 글로벌 시장에 내놓겠다는 구상이죠. 청년 창업가들이 외국 투자펀드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서울시가 적극 지원하겠습니다.

▷장 대표=창업가와 투자자 모두 경직돼 있는 것 같습니다. 창업가가 자금을 지원받기 위해 투자자를 찾아가더라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습니다. 반면 투자자는 막상 투자할 스타트업이 없다고 호소합니다. 창업가와 투자자가 자유롭게 왕래하고 만날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합니다.

▷박 시장=기존 서울창업허브와 개포디지털혁신센터 외에 창업가와 투자자가 함께 모일 수 있는 사랑방을 만들겠습니다. 함께 어울려야 기술에 대한 이해도 높아질 수 있죠. 분위기가 딱딱한 공식적인 자리에서만 만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이주훈 대표=기술 창업을 통해 수익을 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이를 버텨내는 데는 기술도 중요하지만 소비자에게 접근할 수 있는 제품을 먼저 내놓아야 합니다. 한국에선 투자를 받으면 단기간에 수익을 빨리 내야 하고 수익을 내지 못하면 빚을 떠안게 됩니다.

▷박 시장=창업기업에 대한 장기적인 투자가 부족하다 보니 이른 시일 내에 수익을 낼 수 있는 제품이 필요하다는 뜻이군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 노력하겠습니다. 서울시와 산하기관은 연간 2조원가량의 물품을 구매하고 있습니다. 서울시가 물품을 사는 모든 기업 목록을 용역 작업을 통해 분석해 보겠습니다. 가능하면 ‘잘나가는’ 기업보다 창업기업 및 중소기업 제품을 우선 구매하도록 할 계획입니다. 일정 품질 수준은 맞추되, 같은 품질이라면 창업기업 제품을 우선 구매하는 정책이 필요합니다.

▷우 대표=지난해 상암DMC(디지털미디어센터)에서 열린 행사 때 회사에서 생산한 커피 로스팅 기계를 선보였습니다. 당시 박 시장께서 청년창업 지원을 위해 서울시가 로스팅 기계를 구매하도록 하겠다고 하셨는데 결국 판매에 실패했습니다. 서울시 공무원들이 워낙 바쁘다 보니 창업기업까지 일일이 신경쓰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박 시장=시장이 직접 지시했는데도 담당 공무원이 바쁜 업무 탓에 신경을 쓰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공무원에게만 맡겨놓아선 안 될 것 같습니다. 창업가들이 보유한 기술을 구매처와 연결시키는 역할을 하는 기술 마케터 혹은 코디네이터를 둘 계획입니다. 기술 코디네이터 한 명이 몇 개 창업기업을 전담해 창업가들이 보유한 기술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도록 서울시 등 각종 구매처에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하는 개념이죠. 우선 현장에서 창업 경험이 있거나 전문성이 있는 석·박사급 인력을 100명 정도 채용하겠습니다

▷이동학 대표=서울대 산학협력단이 관리하고 있는 특허기술의 가치만 10조~20조원에 달합니다. 교수와 학생 모두 활용하지 않은 채 실험실에 방치되는 기술도 많죠. 대학이 막대한 예산을 들여 개발한 기술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박 시장=내년에 용역 사업을 통해 대학에서 잠자고 있는 기술을 정리·분석하는 방안을 추진하겠습니다. 특허가 없는 기술이라면 잠재적 창업가들에게 공개할 수 있는지도 검토해볼 필요가 있겠군요.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