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조금만으로는 출산율을 살 수 없다"
한국의 출산율은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다. 2010~2015년 합계출산율(15~44세 가임기 여성이 평생 낳는 아이의 수)은 평균 1.23명으로 끝에서 네 번째였다. 세계 평균 출산율(2.5명)의 절반도 안 된다. 심각한 초저출산 사회다. 출산율이 이렇게 낮으면 고령화(인구 수 대비 노인 비율)가 급격히 진전되고, 연금 등 사회복지 시스템의 기반이 위축되며, 궁극적으로 인구 수가 크게 감소해 경제 활력을 상실한다.
"보조금만으로는 출산율을 살 수 없다"
한국뿐 아니라 저출산 위기를 겪고 있는 각국 정부는 ‘아이를 더 낳으라’고 국민들을 채근한다. 제일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인센티브는 경제적 보조금, 곧 돈이다. 아이를 많이 낳을수록 지급되는 아동수당을 늘리는 것이다.

문제는 돈을 줘도 출산율이 잘 높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왜일까. 이달 초 마티아스 돕케 미국 노스웨스턴대 교수와 파비안 킨더만 독일 본대 교수가 유럽 19개국의 출산율 문제를 연구해 내놓은 ‘세대와 성 프로그램’ 연구결과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경제정책연구센터(CEPR) 포털에 게재된 연구결과에 따르면 서유럽 국가는 대부분 너그러운 출산·육아휴직 제도가 있고 양육비 보조 시스템을 갖추고 있으며 무상으로 다닐 수 있는 공립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합계출산율 추이를 보면 1.7~2.0명에 근접한 벨기에 프랑스 노르웨이 등의 집단(A)과 1.5명에도 못 미치는 낮은 출산율로 고전하는 독일 스페인 오스트리아 등의 집단(B)으로 나뉘는 현상이 관찰된다.

연구진은 이 같은 국가 간 차이가 발생하는 원인을 부부간 의견 불일치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아이를 낳으려면 부부 의견이 일치해야 하는데, 양육 부담이 여성에게 몰리는 국가에서는 자녀를 더 낳는 문제에 대해 남녀 간 의견 불일치 차이가 매우 크고, 이것이 합계출산율이 높아지지 못하도록 하는 요인이라는 분석이다. 쉽게 말해 남편은 ‘더 낳자’고 하는데 아내는 ‘싫다’고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를 학술적으로 표현하면 ‘아이를 낳을 것이냐에 대해 남성은 동의하는데 여성이 동의하지 않는 비중(a)과 여성은 동의하는데 남성은 동의하지 않는 비중(b)의 차이(a/b)가 클수록 출산율이 낮은 경향이 있다’고 설명할 수 있다. 자녀가 없거나 한 명일 때는 성별 간 불일치 비중이 비슷하지만 두 명 이상인 경우엔 불일치 격차가 매우 커지며, 저출산 국가에선 이 격차가 더 가파르게 벌어진다고 연구진은 지적했다.

연구진은 양육비용을 정부가 보조하는데도 출산율이 높아지지 않는 이유는 ‘가정 내 양육 부담’이 일방(여성)에게 쏠려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런 이유로 공공 어린이집 운영과 같이 여성의 양육부담을 경감하는 정책이 단순히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보다 두 배 이상 출산율 상승에 효과적이었다고 이들은 전했다. 사회가 돈으로 출산율을 살 수 없고, 사회 전반의 ‘양성평등’이 촉진돼야 궁극적으로 출산율이 현상 유지 수준(합계출산율 2.1명)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뜻이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