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만이 앓고 있는 조현병…말수 갑자기 줄고 분노·집착 늘면 의심
지난 17일 서울 강남역에서 조현병(調絃病·정신분열증)으로 여섯 차례 입원한 적이 있는 30대 남성 김모씨가 20대 여성을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은 이번 사건을 조현병 환자인 김씨가 여성들에게 괴롭힘당한다는 망상 때문에 저지른 ‘묻지마 범죄’로 결론 내렸다.

조현병은 말 행동 감정 인지 등 다양한 영역에서 복합적 증상이 나타나는 정신질환이다. 조현병에 걸리면 사람의 말소리와 같은 환청이 들리기도 하고 스스로 우주의 사령관이라고 생각하거나 세상이 곧 망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등 망상 증세를 보이기도 한다. 조현병의 원인과 증상, 치료법 등을 알아봤다.
50만이 앓고 있는 조현병…말수 갑자기 줄고 분노·집착 늘면 의심
국내 환자만 50만명 추정

뇌는 인간의 정신과 신체적 기능을 조절, 관리하는 기관이다. 뇌에 이상이 생기면 다양한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조현병은 뇌에 이상이 생겨 발생하는 뇌질환이다.

조현병은 환자에 따라 증상이 다양하게 나타난다. 정신질환은 소수가 앓고 있는 병이라고 여기기 쉽지만 조현병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흔한 병이다. 지난해 국내에서 조현병으로 의료기관을 찾아 치료받은 환자는 10만명을 조금 넘는다. 의료계에서는 국내에서 50만명 정도가 조현병을 앓고 있거나 앓게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들의 가족을 4명으로 계산하면 현재 적어도 200만명 이상이 조현병 때문에 정신적, 경제적 문제를 겪고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조현병 발병률은 남녀 간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다만 남성은 15~25세 환자가 가장 많고 여성은 남성보다 10년 정도 증상이 늦게 나타난다. 질병 치료 효과는 여성이 남성보다 좋다.

조현병 원인에 대한 많은 유전적, 신경해부학적, 생리적, 화학적, 생물학적, 사회심리학적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아직 정확한 원인은 확인되지 않았다. 생물학적·유전적으로 조현병 성향을 가진 사람이 스트레스에 노출됐을 때 발병한다는 학설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진다.

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와 허지원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는 조현병과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조현형 성격장애가 도파민 분비 조절 기관 이상으로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환청 망상이 대표 증상

조현병은 환자마다 다양한 증상을 보인다. 모든 환자가 동일한 증상을 호소하지 않고 각각의 환자가 여러 가지 증상을 보인다. 이 때문에 환자 가족이나 이웃들은 자신이 경험한 환자를 통해 조현병에 대한 왜곡된 생각을 갖기 쉽다. 한창수 고려대 안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조현병은 사고(思考)의 장애로 볼 수 있다”며 “이야기를 하다 열차가 탈선하듯 엉뚱한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 내용의 말이 뒤죽박죽 섞이기도 한다”고 말했다.

환청은 조현병의 가장 흔한 증상이다. 환청이 환자의 행동을 일일이 간섭하거나 욕을 하고 특정 행동을 하라고 지시하기도 한다. 없는 것이 보이는 환시, 없는 것이 만져지는 환촉 등 신체환각 증상을 호소하기도 한다.

망상 증상도 보인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믿는 것이다. ‘누가 나를 감시하고 내 뒤를 미행한다’ ‘내 주변에서 도청하고 몰래 카메라로 감시한다’ ‘작당해서 나를 못살게 군다’ ‘밥에 독약을 넣었다’ ‘내 생각을 빼앗아 가서 생각을 할 수 없다’ ‘나를 조종한다’ ‘텔레파시를 보낸다’ ‘TV 라디오 신문에서 내 얘기를 한다’는 것과 같이 관계망상 증상을 호소하는 일이 흔하다. 과대망상, 배우자의 부정을 의심하는 질투망상, 종교와 연관된 망상, 죄책망상, 허무망상 등의 증상도 보인다.

나해란 가톨릭의대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대인 관계나 사회 활동을 피하려는 경향이 점차 심해지면서 한 가지 주제에 집착하고 자기 생각에 몰두하는 경향이 지속되면 조현병을 의심해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약물치료 중요

조현병으로 진단되면 환자가 뇌세포의 기능 이상으로 나타나는 증상을 조절해 정상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치료를 한다. 약물치료가 가장 우선적인 치료법이다. 불안, 초조, 안절부절못함, 불면, 집착, 환각, 망상, 짜증, 분노 폭발, 난폭한 행동 등은 약물치료 효과가 크다.

다만 증상이 재발하면 약물치료 반응이 떨어지기 때문에 조기에 발견해 치료해야 한다. 한 교수는 “항정신질환약물을 지속적으로 투여하면 재발 가능성이 4분의 1로 감소한다”며 “환자나 가족이 약물치료에 거부감을 갖지 않도록 서로 격려하고 잘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정신과 약물에 대한 오해나 편견 때문에 치료를 거부하는 환자가 많다. 대표적인 편견이 중독성이나 습관성이 있다는 것이다. 근래에 사용하는 약물은 중독성과 습관성이 거의 없다. 환자에 따라 약을 먹으면 손 떨림이나 졸음 등의 부작용이 있을 수 있지만 대부분 조절이 가능하다. 약물치료를 시작하면 증상이 눈에 띄게 좋아진다.

‘조현병=범죄’ 편견 버려야

조현병 환자는 범죄를 저지를 위험이 높다는 편견을 버려야 한다. 정한용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장(순천향대 부천병원 정신과 교수)은 “조현병 환자가 망상에 대한 반응이나 환청의 지시에 따라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있지만 범죄를 저지를 위험은 일반인보다 그리 높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설명했다.

조현병 환자가 급성 악화기에 환청과 망상에 압도돼 불안 초조 충동조절 등의 어려움을 호소할 수 있다. 이 시기 일부는 본인이나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행동을 하기도 한다. 이는 적절한 약물치료를 통해 조절할 수 있다.

정 이사장은 “정신질환자에 대한 편견이 커지면 환자와 가족은 낙인으로 인해 질환을 인정하기 더 어려워지고 돌봄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으로 피할 가능성이 높다”며 “편견을 해소하기 위한 가족과 주위 사람의 이해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도움말=한창수 고려대 안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나해란 가톨릭의대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정한용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장(순천향대 부천병원 정신과 교수), 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