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준 기자
김범준 기자
중형 유조선 전문 조선사인 SPP조선 매각이 사실상 무산됐다. 삼라마이더스(SM)그룹이 올해 초 SPP조선을 인수하겠다고 나섰지만 채권단과 인수 조건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채권단은 지난 3월 체결한 인수 관련 양해각서(MOU) 조건을 바꿀 수 없다는 입장이고, SM그룹은 MOU대로는 인수할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SM그룹이 인수하지 않으면 SPP조선은 청산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

산업은행은 25일 자율협약(채권단 공동관리) 중인 STX조선해양에 대한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 전환 방안을 이달 말까지 확정하기로 했다. 당초 올 하반기 법정관리 여부를 결정키로 했으나 STX조선이 이달 말 돌아오는 결제자금을 갚을 능력이 없어 부도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아울러 자율협약 중인 STX중공업과 (주)STX도 함께 법정관리로 전환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채권단은 자율협약 상태인 성동조선해양을 법정관리로 전환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STX조선에 이어 SPP조선과 성동조선까지 법정관리를 받을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정부의 조선산업 구조조정 정책이 실패로 끝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침몰하는 '조선 왕국'] '구조조정 모범'이라던 SPP 매각 무산…중형 조선사 '줄파산' 예고
○SPP조선 매각 무산 위기

SPP조선은 ‘조선 구조조정 모범답안’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구조조정 이후 실적이 개선되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해 국내 조선사 중 유일하게 흑자를 기록했다. 이런 상황에서 SM그룹이 올해 초 SPP조선을 인수하겠다고 나섰다. 3월 인수를 위한 MOU를 채권단과 체결했다. SM그룹이 1000억원에 SPP조선 사천조선소를 인수하고, 2000억원의 부채를 떠안는 조건이었다.

하지만 SM그룹은 정밀실사 후 “이 상태로 인수할 수 없다”고 밝혔다. 우오현 SM그룹 회장과 채권단은 지난 19일 직접 만나 담판을 시도했지만, 이견만 확인했다. 주채권은행인 우리은행은 SM그룹에 27일까지 결론을 내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양측이 이견을 좁힐 여지가 없어 계약이 무산된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게 업계 분석이다.

우 회장은 “채권단은 인력 구조조정이 완료됐고, 도크(선박 건조시설) 공백기 6개월만 지나면 꾸준히 일감이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며 “그러나 실사 결과 인력 규모는 적정 인력(300명)의 두 배인 600명 수준이고, 도크는 1년 이상 비게 된다”고 지적했다. 우 회장은 “인수해도 일거리가 없어 돈을 벌지 못하는 회사를 그럴듯하게 포장해 인수하라고 한 셈”이라며 “하루에만 1억~2억원이 필요하고 인력 구조조정 비용까지 추가로 드는데 이를 그대로 인수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조선산업이 위기에 빠진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SPP조선 인수를 결정했다”며 “조선산업에 희망이 남아 있다면 우리가 힘을 보태자는 생각이었지만 채권단이 ‘빨리 털고 나가겠다’는 식으로 나와 수용할 수 없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채권단은 MOU에 제시된 625억원 한도의 지원 외에 추가 지원을 해야 한다”고 했다.

반면 주채권은행인 우리은행 관계자는 “MOU를 체결할 때 625억원 한도 내에서 가격을 조정할 수 있다고 명시했고, 그 범위 안에서만 협상이 가능하다”며 “이 한도를 넘어가면 다른 채권은행의 동의를 얻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채권단은 계약 조건을 바꿀 계획이 전혀 없다”고 덧붙였다.

○성동조선도 법정관리 위기

성동조선도 법정관리로 전환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 관계자는 “‘수주절벽’이 계속되면 성동조선을 법정관리로 보낼 수밖에 없다”며 “중소 조선사 구조조정은 최대한 빨리 마무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수출입은행과 삼성중공업이 체결한 경영협력협약이 아무런 효과를 내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다.

성동조선 주채권은행인 수출입은행은 최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경영협력협약 결과에 대해 “수주가 없다 보니 가시적인 성과가 없다”고 보고했다. 수출입은행은 지난해 삼성중공업에 위탁경영 형태로 성동조선 경영을 맡아달라고 요청했지만 삼성중공업이 강하게 거부하면서 협력 수위를 낮췄다.

하지만 그 이후 성동조선의 수주가 끊겼다. 경영협력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올해 이후 성동조선은 한 척의 선박도 수주하지 못했다.

업계 관계자는 “수출입은행이 시장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무리하게 성동조선을 삼성중공업에 맡겼고, 그 결과 시너지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도병욱/김일규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