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미스 사이공
20세기 후반 최악의 전쟁은 단연 베트남전쟁(1960~1975년)이다. 전쟁이 끝난 지 40년이 넘도록 베트남전은 그 치열했던 양상만큼이나 슬픈 이야기들을 남겼다. 수백만명의 사상자, 고엽제에서부터 생이별, 고아, 보트피플에 이르기까지. 미국인들도 미군 5만8000명이 전사한 이 전쟁을 영화 ‘디어 헌터’, ‘플래툰’, ‘포레스트 검프’ 등으로 되새기고 있다.

베트남전이 남긴 또 다른 유산이 미군과 베트남 여성 간의 혼혈인 ‘부이도이(Bui Doi)’다. ‘삶의 먼지’라는 뜻의 부이도이들은 종전 이후 엄마와 생이별한 채 미국 등으로 보내졌다. 이 과정에서 1985년 영국 신문에 실린 베트남 여인과 어린 아들의 이별 장면이 뮤지컬 ‘미스 사이공’의 계기가 됐다.

‘미스 사이공’은 뮤지컬 ‘레미제라블’을 만든 작곡가 클로드 미셸 쇤버그와 작사가 알랭 부브릴 콤비에 의해 1989년 탄생했다.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초연했고 2년 뒤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로 진출했다. 초대 킴 역을 맡은 필리핀 출신 리아 살롱가는 오디션에서 2000 대 1의 경쟁을 뚫고 발탁돼 세계적 스타가 됐다. ‘미스 사이공’은 10년간 영국에서 4264회, 미국에서 4092회 공연됐다. 지금도 세계 각지에서 리바이벌 공연이 이어지고 있다.

사실 ‘미스 사이공’은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을 배경만 바꿔 뮤지컬로 옮긴 것이다. ‘나비부인’이 그랬듯이 왜곡된 오리엔탈리즘이나 가해자가 구원자로 둔갑하는 설정 등으로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롱런하는 비결은 누구나 공감할 극적 요소를 두루 갖췄기 때문이다.

17세 베트남 처녀 킴과 미군 장교 크리스의 운명적 사랑, 짧은 만남과 긴 이별, 전쟁과 고초, 재회와 갈등, 영원한 이별 등이 아름다운 뮤지컬 선율에 스며들었다. 특히 킴이 아들을 보내고 돌아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장면에서 객석은 매번 울음바다가 되곤 한다. 걸작은 항상 특수한 이야기에서 인류 보편성을 형상화해 낸다.

오바마 대통령이 베트남을 방문해 보여주는 행보가 화제다. 그는 과거 미군이 폭격했던 하노이의 서민식당에서 베트남 사람들 틈에 섞여 6달러(약 7000원)짜리 쌀국수로 저녁식사를 했다. 남중국해, TPP 등 전략적 필요성에 따른 방문이지만 쌀국수 이벤트를 연출하면서까지 전쟁의 앙금을 가라앉히려는 노력이다.

우리도 베트남에 남긴 상흔이 결코 적지 않다. 미국에 부이도이가 있다면 한국은 한국인 혼혈인 라이따이한이 있다. 공식적으로 인정조차 하지 않는….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