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묘약', 한국 풍경 속으로 들어온 이탈리아 아리아
상투를 튼 농부들이 농기구를 들었고, 아낙들은 빨래터에 걸터앉았다. 구성진 민요 가락이 흘러나올 분위기지만 정작 이들은 유창한 이탈리아어로 마을의 아리따운 처녀를 짝사랑하는 순박한 청년의 속내를 합창한다. 지난 4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개막한 서울시오페라단의 오페라 ‘사랑의 묘약’은 자칫 ‘시도’로 그칠 수 있는 동서양의 문화 결합을 성공적으로 이뤄낸 무대였다.

공연은 이탈리아 작곡가 가에타노 도니체티가 1832년 발표한 유명한 희극 오페라를 1900년대 구한말 시대 한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펼쳐냈다. 극 초반엔 다소 어색하게 보였지만 주인공들의 사랑이 본격적으로 전개되면서 ‘동서양의 조합’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시대와 언어를 초월해 이전 오페라 무대에선 볼 수 없던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한국 특유의 정서와 이탈리아의 화사한 아리아가 유기적으로 어우러졌다. 형형색색의 옛 등불과 산수화 배경의 무대도 조화를 이뤘다. 극중 인물들의 노래와 연기가 한국 정서를 잘 담아냈다.

극의 중심을 이루는 네모리노와 아디나의 톡톡 튀는 사랑의 줄다리기가 흥미롭게 펼쳐졌다. 아디나 역을 맡은 소프라노 홍혜란이 당찬 여성의 매력을 마음껏 발산했다. 네모리노 역의 테너 허영훈은 풍성한 성량으로 아리아 ‘남몰래 흘리는 눈물’을 열창해 큰 박수를 받았다.

하지만 아디나와 결혼하기를 원하는 군인 벨코레가 등장해 네모리노와 삼각관계를 보여주는 장면에선 유독 긴장감이 떨어졌다. 오는 8일까지. 2만~12만원.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