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총선이 끝나자마자 ‘부실기업 구조조정’ 문제를 꺼내들었다. 김 대표의 발언을 계기로 구조조정 논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구성이 가시화되고 있다. 김 대표는 24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지난 2년간 박근혜 정부가 경제 활성화에 초점을 맞춰 아베노믹스(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경제정책) 흉내만 내다보니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며 “구조적인 문제를 경기순환형으로 접근하다 보니 돈만 많이 들어가고 아무 성과를 못 냈다”고 지적했다. 김 대표는 “‘한국판 양적 완화’니 뭐니 돈을 풀어서 경기를 부양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고 했다.

김 대표는 “경제민주화를 재벌개혁으로 혼동해서는 안 된다. 나는 한 번도 재벌개혁을 입에 올린 적이 없다”며 “시장의 공정한 경쟁룰을 만들자는 게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부실기업 구조조정에 대해 “부실기업에 돈을 넣어 연명하게 하는 구조조정은 안 된다”며 “정부 방향이 맞으면 입법 지원을 포함해 적극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정부 경제정책을 연일 비판하고 있다.

“멀리 따질 것도 없이 국민의 삶이 어려워졌다. 정부의 경제정책이 실패한 것은 경제 상황에 대한 인식부터 잘못됐기 때문이다. 전혀 엉뚱한 정책이 현장에서 먹혀들 턱이 없지 않은가.”

▶정부의 어떤 상황 인식이 잘못됐다고 보는가.

“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 경제가 처한 상황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다. 지난 2년을 살펴보면 정부는 경제 활성화라는 데 포커스를 맞춰 ‘아베노믹스’를 흉내내면 뭐가 될 거라고 생각한 것 같다. 그게 별로 의미가 없다는 것이 확인됐다. 일본 경제가 침체하자 단순한 경기 문제로 보고 적당히 돈이나 집어넣으면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한 게 아베노믹스의 실체다. 경기 부양한답시고 매년 11조엔(약 1000억달러)씩 재정적자를 감수하고 쏟아부었는데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 경제 상황에 대한 진단 자체가 잘못돼서 그런 문제가 발생한 거다. 구조적인 문제를 경기순환형으로 접근하다 보니 돈만 많이 들어가고 효과가 없을 수밖에 없다.”

▶선거 후 ‘불쑥’ 구조조정 문제를 들고나왔다.

“갑자기가 아니다. 진작에 했어야 할 일이다. (구조조정을) 자꾸 미루면 미룰수록 한국 경제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정부가 빨리 인식하라는 차원에서 문제 제기한 것이다.”

▶김 대표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구조조정 방향은 무엇인가.

“부실기업에 돈을 대줘서 수명을 연장시키는 것은 구조조정이 아니다. 산업 분야 중 현재 가장 심각한 양상을 보이고 있는 조선업 철강업 같은 곳을 예로 들 수 있다. 이 분야에서 지금과 같은 생산량을 유지하려면 들어가는 비용이 얼마인지, 이것이 중장기적으로 어떤 문제를 야기할 것인지 고민해봐야 한다. 정부 정책은 어느 특정 분야가 살아남을 수 있게 도와주면 절대 안 된다. 제대로 변화한 경제 상황에 적응할 수 있는 쪽으로 지원하는 게 구조조정이다. 그렇지 않으면 구조조정의 의미가 없다.”

▶구조조정의 전제조건으로 실업 대책을 언급했는데.

“현안을 알면 청사진을 정확히 제시해줘야지, 말로만 구조조정을 떠들면 의미가 없다. 구조조정을 하려면 제대로 할 수 있는 여건부터 조성해야 한다. 예를 들어 캐퍼시티(생산량)를 줄여나가는 구조조정을 하면 자연적으로 실업문제가 발생한다. 그 사람들을 수용할 대책을 강구하고, 다른 분야로 전업할 수 있는 교육시스템 같은 것도 갖춰야 한다. 그런 준비 없이 구조조정을 한다는 얘기는 구조조정을 안 한다는 얘기와 같다.”

▶야당이 내세운 사회안전망 구축 등이 구조조정을 더디게 하고 현실적이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회안전망이 제대로 돼야 사회문제가 안 생기는 거다. 지금까지 구조조정이 안 된 것은 정치권이 대규모 해고사태로 인한 사회 불안정이 겁나서 못한 것 아니냐. 사회안전망을 만드는 것은 정부가 할 일이지 야당의 과제는 아니다. 야당은 문제 제기를 한 것이고 정부 정책이 객관적으로 옳은 방향으로 가면 적극적으로 동조할 것이다. 입법 지원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는 구조조정을 넘어 ‘구조개혁’을 들고 나왔다.

“그 사람이 말한 구조개혁이 뭘 얘기하는지 모르겠다. 구조조정은 강도의 높고 낮음이 있을 수 없다.”

▶당내 구조조정 전담기구를 세우고 ‘로드맵’까지 마련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우리가 구조조정을 집행할 수 있는 여건은 아니다. 정부의 구조조정 노력과 별개로 우리도 제1당으로서 내년 대선을 준비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는 정당이다. 우리가 집권했을 때 구조조정을 어떻게 할 것이냐 등을 준비하는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

▶2012년 쓴 《지금 왜 경제민주화인가》라는 책이 다시 조명받고 있다.

“현 정부 들어 경제민주화가 하나도 진척된 것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사회의 가장 큰 정책적 화두는 여전히 경제민주화다.”

▶‘경제민주화’가 사회 양극화 해소에 초점을 맞춰 지속적인 경제 성장의 틀을 훼손할 수 있다는 반론도 있다.

“경제민주화와 성장은 별개 문제다. 경제민주화한다고 성장이 안 된다는 근거가 어딨나. 경제민주화는 시장원리를 보다 더 보완하고 공정하게 경쟁시키자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힘이 센 주체들에 시장의 룰(rule)을 지키라고 하는 것인데, 그게 무슨 경제 성장에 배치되나. 일각에서 경제민주화를 자꾸 ‘재벌개혁’과 동일시해 흑백논리로 몰고 간다. 난 한 번도 재벌개혁을 입에 올린 적이 없다. 그런 식으로 자꾸 오해를 부추기니까 아무것도 안 되는 것이다.”

▶정부 여당에서는 구조조정과 노동 4법을 연계해 처리해야 효과가 있다고 얘기한다.

“노동 4법과 구조조정이랑 무슨 상관이 있나. 실업이 발생할 때 그걸 어떻게 대처할지 사전 준비가 없으면 구조조정 자체가 힘들다. 지금 노동 4법은 논의할 단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19대 국회에서 서비스발전기본법과 노동법 등 쟁점법안 처리가 가능한가.

“이들 법안이 민생 법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20대 국회에서 충분한 논의를 거쳐 처리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한다.”

▶당 정책위원회 의장이 공석인데.

“당선자 중 누가 적합한지 고심하고 있다. 정책위 의장은 중요한 자리다. 꼭 ‘경제통’이어야 할 필요는 없지만 경제에 대한 포괄적 지식을 갖춘 인물이어야 한다.”

▶지난 1월27일 대표 취임 이후 당이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

“내가 오기 전에는 당이 존속할지가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그동안 당이 안정을 되찾고 선거에서도 나름 성과를 냈다. 취임하면서 더민주의 과거 행태를 바꿔서 국민이 신뢰하는 수권 정당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지금 그 길로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김 대표의 ‘당 대표 추대론’을 놓고 이런저런 얘기가 나온다.

“그 얘기는 하고 싶지도 않다. 내가 누구보고 추대해 달라고 한 적도 없고 관심도 없다. 당내에서 얘기하면 그런가보다 하고 지켜보는 거지.”

손성태/김기만 기자 mrhan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