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 Insight] 켄트 시리 미국 다비타 CEO, 마을 공동체 같은 '소통 경영'으로 15년 만에 매출 10배 늘려
“All for one and one for all(모두는 하나를, 하나는 모두를 위하여).”

미국 최대 신장 투석업체 다비타(Davita)에서는 연말 마지막 미팅 행사장에 모인 직원들이 이 같은 구호를 외친다. 달타냥과 삼총사 친구들을 주인공으로 한 프랑스 문호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 《삼총사》에 나오는 명대사다.

기업의 연말행사에 으레 등장하는 식상한 슬로건을 떠올리면 곤란하다. 다비타 직원들은 함성을 부르짖는 것뿐 아니라 실제 삼총사를 재연하는 짧은 연극까지 펼친다. 칼을 차고 마스크를 쓴 ‘직원 배우’가 까다로운 규제를 내세우는 연방관료 역할의 인물을 응징하는 식이다.

매년 무대에 올리는 삼총사는 최고경영자(CEO)이자 회장인 켄트 시리(60)의 작품이다. 직원들의 화합과 소통, 무엇보다 익살맞은 재미를 통해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을 방법을 고심하던 시리가 당시 유행하던 영화 ‘아이언 마스크’를 본 뒤 고안한 아이디어였다. 그도 직접 삼총사 옷을 입고 출연하곤 한다. 1999년 삼총사 초연을 위해 시리는 할리우드로 직원을 보내 의상과 장비를 빌려왔다. 회사의 분위기 일신을 위해 이런 독특한 행사까지 기획했어야 할 만큼 당시 다비타의 사정은 절박했다.

파산 직전의 기업 인수…기초부터 시작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하고 헬스케어 컨설턴트로 일하던 시리가 1999년 인수한 다비타(당시 사명 토털리널케어·TRC)는 좌초 직전의 난파선 처지였다. 능력에 부치는 여러 건의 인수와 방만한 운영으로 회사는 파산 문턱에 몰렸다. 고위 관리자들은 거의 떠난 상태였다. 보유 현금은 계속 줄어 1만2000명의 직원에게 월급도 주지 못할 판이었다. 시리는 배와 함께 침몰해야 하는 선장의 역할을 거부했다.

그는 회사 이름부터 바꿨다. 이탈리아어로 ‘생명을 주는’이라는 뜻의 다비타는 이때 붙은 이름이다. 또 직원을 독려하기 위해 회사 비전을 강조했다.

하지만 직원들은 미래에 대한 장기 계획에 별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들의 관심은 오로지 6개월이나 1년 뒤에도 자신의 자리가 유지될 수 있을지에 대한 것으로 가득했다. 시리는 직원들의 눈높이에 맞게 작지만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는 회사를 기초부터 다시 설계했다. 현금 확보, 제날짜에 맞춘 청구서 발부와 같은 자질구레한 업무 조정부터 조직 관리 체계도 정비했다. 직원들이 내선 번호는 물론 이메일 주소조차 갖고 있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한 시리는 사내 커뮤니케이션을 확대하기 위해 통신 인프라를 새로 구축했다. 직원 간 소통량은 5배가량 늘었고, 업무 효율성 증대로 이어지기 시작했다. 실제 다비타 인수 후 시리가 가장 주력한 분야는 이 같은 커뮤니티였다.

마을처럼 회사 경영, “CEO는 시장”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에 있는 다비타 본사는 직원 사이에서 ‘마을(village)’로 불린다. 시리는 이 마을의 시장(市長)을 자처한다. 그의 사무실 출입문에는 ‘Mayor KT(켄트 시장)’라고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위스콘신주의 작은 마을에서 성장한 시리의 어린시절 꿈이 마을 시장이나 기업 경영자가 되는 것이었다고 하니 한 번에 두 가지 꿈을 모두 이룬 셈이다.

기업을 마을처럼 운영하는 것이 시리의 경영철학이다. 직원들이 좋은 이웃과 시민의 마음으로 소통하며 마을 공동체와 같은 유대감을 유지하고, 이 같은 정서가 소비자에게까지 확대돼야 기업이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다비타가 직원에게 월급을 벌기 위해 다니는 직장이 아닌 ‘우리 마을’이라는, 주인의식을 심어주기 위한 것이 시리의 지향점이다. 2014년 하버드비즈니스리뷰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주인의식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 적이 있다. “렌터카를 세차하는 사람은 없다. 사람들은 오너십을 가져야만 주어진 일보다 더하기 마련이다. 일터도 마찬가지다.”

2011년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강연에서는 이런 말도 했다. “리더십은 직책과 아무 상관이 없다. ‘회사가 나를 임원으로 진급시킬 때까지 나는 리더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지 마라. 리더는 시간과 장소에 상관없이 사람들을 이끈다. 리더십은 삶의 방식이지 일시적인 전략이 아니다.”

실적 개선 괄목…모범경영의 대표 사례

직원들의 참여의식을 이끌어내면서 다비타는 해마다 눈부신 성과를 거두고 있다. 시리가 인수했을 무렵의 다비타는 매출 14억달러에 3000만달러 손실이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들고 있었지만 2013년엔 매출 118억달러, 이익 6억6300만달러를 기록했다.

다비타는 미국 전역에 2000여개의 신장투석센터를 두고 있으며 약 100만명의 환자를 관리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은 138억달러로 15년 만에 거의 10배 증가했다. 포브스가 선정한 ‘2015 글로벌 기업 2000’ 순위에서 679위에 올랐다.

망해가는 기업을 인수해 15년 만에 세계 정상급 반열에 올려놓은 시리의 소통형 리더십은 그의 모교인 하버드대는 물론 스탠퍼드대 등 주요 학교에서 모범적인 경영 사례로 인용되고 있다. 시리는 “커뮤티니가 첫 번째고 회사는 두 번째”라고 강조하곤 한다. 기업으로서 이익에 관심이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 자체는 수단일 뿐 최종 목표는 아니라는 뜻에서다.

시리는 덴버 본사에서 가장 전망 좋은 16층 펜트하우스도 동료들을 위해 기꺼이 내놨다. 이곳은 여느 기업처럼 최고경영자의 집무실이 아닌 직원들의 교류를 위한 테라스 공간과 카페테리아로 활용되고 있다.

이정선 기자 sun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