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한국 정부에 식량과 원자재 차관 등으로 진 빚이 2조5189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관련 이자까지 더하면 3조원을 훌쩍 넘는다. 남북관계 경색으로 북한에 수조원을 떼일지 모른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파국 치닫는 개성공단] 정부, 뭉그적거리다 북한에 빌려준 3조5000억원 모두 떼일 판
12일 기획재정부와 한국수출입은행에 따르면 한국 정부는 2000~2007년 북한에 차관 형식으로 쌀 204만t과 옥수수 20만t을 지원했다. 모두 7억2004만달러(약 8717억원) 규모다. 북한은 이 돈을 10년 거치 20년 상환, 연리 1%의 조건으로 갚기로 했다. 한국 정부는 또 2002~2005년 남북 철도·도로 연결사업을 위해 북한에 1억3289만달러(약 1609억원)어치의 각종 자재와 장비를 차관 형태(10년 거치 20년 상환, 연 1% 금리)로 빌려줬다. 2007년에도 섬유·신발·비누 생산에 필요한 원자재 8000만달러(약 968억원)어치를 북한에 차관 방식으로 제공했다. 같은 해 북한은 이 차관의 3%에 해당하는 240만달러를 원자재인 아연(1005t)으로 갚아 남은 해당 차관은 7760만달러(약 940억원)다.

이렇게 지원한 전체 차관은 총 1조1266억원에 달한다. 정부는 이 비용을 모두 남북협력기금을 통해 빌려줬다. 해당 기금을 운용하는 수출입은행이 북한 조선무역은행에 대출해주는 방식이었다.

여기에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를 통해 북한 경수로 건설사업에 대출해준 11억5000만달러(약 1조3477억원)까지 더하면 북한이 한국 정부에 진 빚은 2조5189억원에 이른다. 이자(최소 1조원)까지 합치면 북한이 갚아야 할 부채 규모는 3조6000억원에 육박한다.

하지만 2007년 현물로 받은 아연 외에는 한국 정부가 되돌려받은 돈은 한푼도 없다. 식량과 철도·도로연결 자재·장비 차관은 북한의 어려운 경제 상황을 고려해 장기(20년)의 상환기간을 줬지만 첫 상환 시기인 2012년부터 지금까지 북한은 입을 닫고 있다. 그렇다고 정부가 손을 놓은 것은 아니다. 수출입은행은 10여 차례 북한 조선무역은행에 상환 촉구 공문을 보내는 등 빚 독촉을 했지만 조선무역은행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수은 관계자는 “언제까지 갚겠다거나 상환일정을 연기해 달라거나 하는 등의 반응이 전혀 없어 답답하다”고 말했다. 연체 사실 통지 후 30일이 지나면 ‘채무불이행’ 사유가 발생해 대출금 전체 상환을 요청하고, 담보권도 실행할 수 있다. 하지만 마땅한 담보도 설정돼 있지 않은 상태여서 정부가 압박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

북한 경수로 건설사업에 대출해준 돈은 국채 발행으로 마련했지만 2006년 사업이 공식 중단됐다. 빌려준 돈을 돌려받을 길은 사실상 없어졌다. 정부 관계자는 “전액 한국 정부의 부실 채권으로 계상돼 세금으로 메워야 한다”고 설명했다. 최근 북한 핵실험과 개성공단 전면 중단 등 남북관계 경색으로 북한에 제공한 차관 전부가 사실상 회수불능 상태가 됐다는 우려도 나온다.

일부에서는 정부의 노력이 부족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금으로 받기 어려웠다면 원자재 등 현물이라도 받아냈어야 한다는 것이다. 국회 관계자는 “북한의 지하자원 등으로 대물상환을 받을 수 있는 구체적 대책을 마련하고 추진했어야 했는데 이미 때가 늦어버렸다”고 말했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