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중반 대형 수출계약 소식을 잇달아 전하며 투자자들을 속여 수백억원을 챙긴 벤처기업가가 해외 도피 6년 만에 붙잡혀 재판에 넘겨졌다. 수출채권 조작 등으로 실적을 부풀려 사기대출을 받은 ‘모뉴엘 사건’의 원조 격이다.

서울남부지방검찰청 형사4부(부장검사 오현철)는 최근 휴대폰 수출계약 체결 등 허위사실 발표로 주가를 끌어올린 뒤 약 2억2000만주의 가짜 주식을 발행해 208억여원을 투자자들로부터 가로챈 혐의로 이금석 전 노드시스템 대표(46)를 구속 기소했다.

이 전 대표는 2000년 3000만원으로 정보기술(IT) 벤처기업인 노드시스템을 창업해 5년여 만에 수조원의 가치를 지닌 기업으로 키워내 ‘신경영인’으로 불리며 유명해진 인물이다. 노드시스템은 2005년을 전후해 러시아 중국 등지로 대규모 통신장비를 수출했다고 선전해 유망 벤처기업으로 주목받았다. 러시아에 5억달러어치 휴대폰을 수출하고 러시아 정부로부터 10년간 20조원 규모에 이르는 와이브로사업 독점권을 따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이 회사가 보유한 셋톱박스 기술 등은 중소기업청이 2조원대의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했다는 소문도 시장에 나돌았다. 장외시장에서 이 회사 주식은 2007년 초 500원대에서 1년 만에 2000원대까지 올랐다.

하지만 2008년 투자자들의 의혹 제기로 서울 영등포경찰서가 수사에 착수하면서 사기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러시아에 휴대폰을 수출했다는 주장은 거짓이었다. 수출계약 행사에는 미리 섭외한 러시아인들을 동원했다. 이 전 대표 등이 주주명부에 기재되지 않은 가짜 주식 수억주를 시장에 매각해 주가 상승에 따른 차익을 고스란히 챙긴 사실도 드러났다. 이에 따른 피해자는 1만여명, 피해 규모는 최소 25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이 전 대표는 경찰 수사가 시작되자 자취를 감췄다가 2009년 중국으로 밀항했다. 나머지 공범 오모씨 등 3명은 법원에서 최대 징역 7년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이 전 대표에 대한 추적은 2013년부터 경찰청이 중국과 도피사범 명단을 교환하면서 재개됐다. 중국 공안은 베이징 일대에서 가명을 쓰며 숨어 있던 그를 작년 말 체포해 지난달 한국으로 송환했다.

검찰 관계자는 “이 전 대표가 연루된 다른 사건이 많아 추가 수사를 벌일 방침”이라고 말했다.

오형주/정소람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