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컨틴전시 플랜'은 없다
뉴욕의 날씨는 예측하기 어렵다. 아침에 맑은 하늘만 믿고 맨해튼에 빈손으로 나갔다가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에 당황해 20달러를 주고 새 우산을 사야 했던 적이 서너 번은 된다. 지금은 가방에 접이식 우산을 항상 넣고 다닌다.

지난해 말 맨해튼 골드만삭스 본사에서 얀 하치우스 수석이코노미스트를 만났을 때다. 경기를 어떻게 예측하느냐는 질문에 “전망(forecasting)은 하지 않는다”는 뜻밖의 대답을 들었다. 대신 “나우캐스팅(nowcasting)을 한다”고 말했다. 실시간 중계를 뜻하는 나우캐스팅은 기상 용어다. 향후 6~12시간 이내 닥칠 날씨를 알려주는 초단기 예보다.

사라진 경기전망

물론 월가의 투자은행(IB)과 신용평가회사들은 ‘기관 전망(house view)’을 갖고 있고 발표도 한다. 미국의 올해 성장률은 2.4%가 될 것이라는 식이다. 그러나 방향을 얘기할 뿐이다. 숫자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상황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골드만삭스는 주말 동안 앞으로 한 주간 글로벌 경기가 어떻게 돌아갈 것인지 보고서를 작성한다. 자체 분석모델에 최신 데이터를 넣어서 시장 상황을 분석해 월요일 아침 애널리스트와 트레이더들에게 뿌린다.

단일 기관으로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이코노미스트를 보유한 미국 중앙은행(Fed)은 어떨까. Fed의 지난해 예산은 39억달러, 한국 돈으로 약 4조7000억원이다. 통화정책에 들어가는 비용을 제외한 운영비다. 이 중 인건비가 29억달러로 75%를 차지한다.

하지만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성명서가 나올 때마다 경기 전망에 대한 논란이 불거진다. 지난해 12월 단행한 기준금리 인상이 적절했는지를 놓고 Fed가 곤경에 처한 것이 단적인 예다. 정확한 경기 예측은 중앙은행에 대한 시장의 신뢰를 좌우하는 핵심 능력이지만 Fed의 ‘실력’이 의심받은 지는 오래다.

무의미해진 비상계획

최근 만난 월가의 한 애널리스트는 “지금은 위기를 사전에 예고하는 조기경보시스템이 작동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실시간으로 전파되는 글로벌 금융시스템의 파괴적 양상은 모든 사전적 대응을 제압할 정도로 강력하다는 설명이다.

한국 정부가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는 컨틴전시 플랜(비상계획)의 한계도 지적했다. “3개월 뒤 위기가 닥칠 가능성이 40%”라는 식의 분석은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설사 대응을 하더라도 시장의 맞대응이 이어지면서 ‘40%의 확률’ 자체가 달라진다. 월가 헤지펀드들의 위안화에 대한 공매도는 중국 정부의 외환통제라는 컨틴전시 플랜까지 감안했다는 게 정설이다.

역설적으로 가장 효율적인 대응은 현재 위기의 정도를 객관적으로 공개하는 것이다. 미국 애틀랜타연방은행은 ‘국내총생산(GDP) 나우(Now)’라는 실시간 분석모델을 갖고 있다. “지난 5일 현재 1분기 GDP 증가율 전망치는 2.2%”라는 식이다. 새 지표가 나오면 곧바로 이를 반영해 새로운 숫자를 공개한다. 나우캐스팅의 목적도 대형 재난이 임박했을 때 최소한의 대피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서다.

세계 경제는 상시 위기상황에 접어든 지 오래다. 이럴 때는 현 상황에 대한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정보의 선제적 전달이 충격을 덜어준다. 게다가 컨틴전시 플랜이 먹히지 않는다는 사실은 정부 스스로 더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뉴욕=이심기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