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지난달 초 4차 핵실험에 이어 한 달 만에 장거리 미사일 발사까지 강행하면서 ‘중국의 역할’에 대한 회의론이 확산되고 있다. 중국을 통해 북한의 도발을 억지한다는 우회 압박 전략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국은 지난 7일 북한의 미사일 도발 하루 만에 미국과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한반도 배치 협상 개시를 공식화했다. “증대하는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서”(류제승 국방부 국방정책실장)라는 설명이지만 중국은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턱밑에 핵무기 장착이 가능한 장거리 미사일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북한의 잇단 도발이 한반도 사드 배치 검토 등으로 이어지면서 동북아 정세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은 이런 상황을 예견하지 못한 걸까.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앞서 중국은 지난 2일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인 우다웨이(武大偉) 한반도사무특별대표를 평양에 보냈다. 그러나 그는 4일 빈손으로 돌아갔고 북한은 이틀 뒤 도발을 강행했다. 중국은 지난달 6일 4차 핵실험 때도 북한당국으로부터 사전 통보를 받지 못했다. 뉴욕타임스는 “중국이 북한의 미사일 실험 등으로 철저하게 무시당했다”고 보도했다.

중국은 광물 등 북한 수출의 90%, 수입의 80%를 차지하는 최대 교역국이다. 중국이 에너지와 식량 등을 수출하지 않으면 북한 경제는 일시에 큰 혼란에 빠진다. 이기현 통일연구원 국제전략연구실 연구위원은 “중국의 대북정책은 기본적으로 대미정책의 하위 변수로 인식된다”며 “미국이 아시아 회귀 전략을 통해 중국을 압박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은 우방인 북한을 압박해 갈등 관계를 만들려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달 27일 베이징을 방문해 북한에 대한 교역중단 등의 제재를 요청했을 때도 중국 정부는 이를 거부했다. 왕이(王毅) 중국 외교 장관은 “새로운 대북 제재는 지지하지만 대립을 부추기거나 한반도의 혼란을 야기하는 방식은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북한의 미사일 발사 이후 전개되는 새로운 상황은 중국 대북 정책의 변화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북핵을 이유로 한국이 사드 배치를 공식화하는 등 한·미·일이 중국을 압박하는 정세가 본격화되고 있는 것이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8일 사설에서 “이번 사태를 통해 ‘어부지리’를 취하는 태도를 가져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어부지리’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하지 않았지만 일본의 재무장이나 한반도 사드 배치 논의 등을 지적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기현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중국은 미국의 압력 때문에 북한을 제재하는 방식이 아니라 주변국의 냉정한 대응과 자제 등을 강조하면서 독자적으로 대북 제재를 추진하는 모양새를 취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워싱턴=박수진 특파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