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공포의 균형' 밖에 없다
새해 들어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전쟁을 준비하는 젊은 군주(君主)의 혈기와 오기만 보이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신년 시작과 동시에 네 번째 핵실험을 단행했고 민족의 명절인 설날 직전에 여섯 번째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했다. 국제사회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발사 장면을 보기 위한 참관대까지 만들어 자신의 위상을 과시했다. 환호하는 북한 주민의 모습이 방영됐고 미사일 발사 성공을 축하하는 불꽃놀이도 이어졌다.

북한은 이번 장거리 미사일을 인공위성을 궤도에 올려놓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함으로써 국제사회로부터 비난을 피하려고 노력했다. 발사체의 이름을 아예 탑재체의 이름인 광명성으로 바꾸기까지 했다. 2012년 12월 발사 때 발사체의 이름을 ‘은하 3호’로, 탑재체의 이름을 ‘광명성 3호’로 명명했던 것과 비교된다. 이는 북한이 ‘우주의 평화로운 이용’은 주권이라는 것을 선전하기 위한 꼼수에 불과하다.

북한의 이런 주장이 허구라는 것을 세상 사람들은 다 안다. 특히 얼마 전에 공개된 김정은 집권 초기 북한군 총참모장이던 이영호의 육성 강연 녹취록이 이를 증명해준다. 이 녹취록에서 이영호는 “인공위성 쏘아올린다는 게 로켓 무기나 같아. 그 로켓에 핵무기 설치하면 미국 본토까지 쏘지”라고 했다. 이영호의 말은 사실이다. 우주로 가면 인공위성이 되는 것이고 위성 탑재체 대신 핵무기를 실어 지구로 재진입시키면 핵미사일이 되기 때문이다. 북한은 핵무기를 탑재한 장거리 미사일을 개발하기 위해 이를 인공위성으로 가장한 실험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우주에는 5000개가 넘는 인공위성이 떠다니고 있고 1년에 수백 개의 위성이 발사된다. 그러나 인공위성 발사를 금지당하는 나라는 없다. 북한만이 예외다. UN 안전보장이사회는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과 관련해 현재까지 5개의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이들 결의안은 북한이 탄도미사일 기술을 적용한 비행체의 발사를 금지하고 있다. 인공위성을 발사하든,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든 여기에 적용한 기술은 모두 탄도미사일 기술이다. 따라서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도 금지 대상이다. 국제사회가 이렇게 결정한 이유는 북한이 언젠가 미사일에 핵탄두를 탑재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런 우려는 점점 현실화하고 있다. 북한은 네 번째 핵실험이 수소폭탄이라고 주장할 정도로 핵기술의 고도화를 달성하고 있다. 또 네 번에 걸친 장거리 미사일 발사가 실패했으나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는 일단 우주 진입에 성공했다. 미국 알래스카와 서부를 넘어 동부의 워싱턴과 뉴욕까지 다다를 정도로 사거리를 늘리고 있다. 탑재 중량도 200㎏까지 무거워졌다. 몇 번의 실험만 더 하면 장거리 미사일에 1t 이하의 핵무기를 탑재한 대륙간 핵탄도미사일이 개발된다.

한국의 입장에서 보면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보다 더 직접적인 위협이 있다. 북한이 갖고 있는 중·단거리 미사일이다. 북한은 150여기의 장거리 미사일뿐만 아니라 50여기의 KN-02 미사일(사거리 120㎞), 600여기의 스커드 미사일(사거리 300~700㎞), 200여기의 노동 미사일(사거리 1300㎞) 등 1000기가 넘는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다. 핵기술이 고도화하면 북한은 이런 중·단거리 미사일과 실험 중에 있는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에 핵무기를 탑재할 것이다.

한국으로선 북한의 중·단거리 미사일과 SLBM이 훨씬 더 위협적이다. 여기에 핵무기를 탑재하는 날 북한은 핵무기의 실전배치를 공포할 것이고, 한국은 북한의 핵 그림자 속에서 살게 될 것이다. 북한은 2016년 정초에 그날이 그리 멀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 북한과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을 달성하기 위한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 우물쭈물할 시간이 없다. 4년 후 북한이 핵무기 실전배치를 선언하는 날이 오게 될까봐 두렵다.

김열수 < 성신여대 교수·국제정치학 ysgold33@sungshin.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