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건 뭐야.”

“고라니가 지나간 듯싶습니다.”

지난 22일 경기 연천군 장남면 원당리에 있는 육군 25사단 GOP대대 상황실. 크고 작은 모니터들 위에 설치된 녹색등이 수시로 켜졌다. 철책 북쪽 1㎞까지 감시할 수 있는 중거리카메라와 최대 400m를 살펴볼 수 있는 근거리카메라 40여대 가운데 일부가 ‘감시’ 신호를 알린 것이다. 영상감시병은 즉각 모니터로 현장을 확인한 뒤 보고했다.
육군 25사단 병사들이 지난 22일 초정밀 광학 감시카메라가 설치된 경기 연천군 장남면 철책선 앞에서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육군 25사단 병사들이 지난 22일 초정밀 광학 감시카메라가 설치된 경기 연천군 장남면 철책선 앞에서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육군이 전방부대에 설치 중인 과학화 경계 시스템의 핵심인 초정밀 광학 감시카메라는 철책 앞 작은 물체의 움직임까지 낱낱이 잡아낸다. 쥐 한 마리의 움직임도 포착할 수 있다고 한다. 민감도를 최고로 높이면 비나 눈에도 반응할 정도다. 비무장지대에 있는 GP(최전방 감시초소) 추진철책의 이상 유무까지 점검할 수 있다. GP 안에서 모니터로 감시하는 병사와 외부에서 활동하는 병사도 확인된다.

대대 상황실에서 적색등이 켜지면 긴장도가 최고조에 이른다. 북한군 등이 GOP(일반전초)에 설치된 철책을 넘거나 절단하면 광센서가 압력 차이를 ‘감지’해 아군에 경보를 울리기 때문이다.

GOP대대는 사단 책임구역의 절반이 넘는 10여㎞를 지켜야 한다. 고도가 120~150m로 그다지 높지 않아 다른 대대보다 경계범위가 넓다. 과학화 경계 시스템이 도입되기 전인 지난 10월까지만 해도 병사들은 하루에 8시간가량 경계근무에 나서야 했다.

야외 초소에서 감시장비 등으로 적의 동향을 살핀 뒤 병영생활관으로 돌아와 쉬었다. 한겨울 혹한과 긴장감 속에서 경계를 서다 보면 피로가 연일 쌓였다. 작업 등 다른 업무도 적지 않았다.

감시카메라가 들어오면서 병력이 투입되는 초소 수가 확 줄었다. 지난달부터 병사들은 하루에 한 번 이동과 순찰을 포함, 2시간가량만 초소를 지킨 뒤 상황실로 돌아와 모니터로 1시간 동안 영상경계 근무를 마치면 쉴 수 있다.

정철범 대대장은 “연말연시를 맞아 물샐틈없는 경계태세를 유지하고 있다”면서도 “과학화 경계 시스템이 구축된 뒤 경계작전을 하던 GOP대대가 철책근무를 마치고 교육훈련을 하는 전투지역전단(FEBA)부대처럼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말했다. 전투지역전단이란 경계 및 감시 병력과 정찰부대가 주둔하는 최전방과 맞붙어 있는 후방지역을 의미한다.

병사들의 경계근무 부담이 크게 줄면서 병영문화도 대폭 바뀌었다. 대대는 지난달 컨테이너를 개조해 ‘독서카페’를 열었다. 책을 좋아하는 병사들은 서가와 책상, 테이블, 의자, 냉난방 설비를 갖춘 독서카페에서 매일 4시간 이상을 보내기도 한다. 체력 단련으로 특급전사가 된 병사도 늘어났다. 안진우 병장은 “부대 내 사이버 지식정보방에 있는 4~5대의 PC로 온라인 강의를 듣거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즐기며 외로움을 달래는 동료도 많다”고 전했다.

군당국은 GOP 과학화 경계 시스템을 내년 2월 말까지 전방 12개 사단에 설치할 예정이다.

연천=최승욱 선임기자 swch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