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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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을 지향하는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는 남다른 면모를 풍긴다. 35세에 시가총액 8조원을 웃도는 카카오를 이끄는 임지훈 대표도 마찬가지다. 지난 10월 말 카카오 제주 본사 ‘스페이스닷원’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임 대표는 분홍색 셔츠에 검은색 면바지를 입고 수줍은 미소를 띤 채 사업 전략을 진중하게 설명했다. CEO가 갖는 권위보다는 혁신 의지가 돋보였다는 평가다.

마이크를 잡은 임 대표는 회사가 나아갈 전략 방향을 ‘온디맨드’라는 키워드로 풀어갔다. 그는 “지난 2~3년을 모바일 시대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기존 PC를 스마트폰으로 옮기는 수준에 그쳤다고 생각한다”며 “차세대 모바일은 언제 어디서나 내가 원하는 정보와 서비스를 곧바로 제공받는 ‘온디맨드’라는 결론을 얻었다”고 강조했다.

모바일 시대 개막 알린 카카오톡

카카오는 2010년 3월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을 출시했다. 2009년 말 애플이 만든 아이폰이 국내에 상륙한 직후였다. 스마트폰으로 문자를 무료로 보낼 수 있다는 입소문에 힘입어 출시하자마자 대박을 쳤다. 단 이틀 만에 10만 가입자가 모였고 1년 후 1000만명을 돌파했다. 한국을 넘어 해외 사용자들에게도 인기를 끌면서 가입자 수가 현재 2억명을 넘어섰다.

2012년 7월 나온 모바일 캐주얼 게임 애니팡이 대성공을 거두면서 카카오의 수익 모델이 없다는 일각의 우려도 말끔히 씻어냈다. ‘카카오 게임하기’는 단순히 카카오의 수익원이 아니라 모바일 게임 시대를 알린 신호탄이었다.

회사가 급격히 성장하면서 카카오는 구인난을 겪어야 했다. 게다가 국내 1위 인터넷 회사인 네이버의 아성을 무너뜨리기엔 인적 자원 등이 턱없이 부족했다. 2014년 10월 업계 2위 인터넷 포털인 다음커뮤니케이션과 합병한 이유다. 카카오는 1500여명의 인력을 추가로 확보할 수 있었다.

카카오택시 성공으로 자신감 얻어

올 한 해 카카오의 최대 성과로 ‘카카오택시’가 꼽힌다. 카카오택시는 모바일 앱(응용프로그램)으로 택시 기사와 승객을 연결해주는 기능을 한다. 지난 3월 서비스를 공식 출시한 이후 누적 5000만콜을 넘었다. 세계 1위 차량 공유 회사인 우버가 각종 논란을 빚으며 철수한 국내 시장에서 카카오가 성공을 거둔 비결은 뭘까. 카카오택시 사업을 총괄했던 정주환 부사장은 정보기술(IT) 기업답지 않게 “사람에 집중한 덕분”이라는 답변을 내놨다. 사업 준비 과정에서 온종일 택시를 타고 다니며 택시기사들의 애환을 직접 들었다. 택시기사와 승객이 상호 평가할 수 있도록 한 시스템이 그래서 나왔다. 택시기사들이 우군이 되자 규제 당국의 협조도 따라왔다.

카카오는 지난 11월 카카오택시의 경쟁력과 노하우를 기반으로 고급 콜택시 서비스인 ‘카카오택시 블랙’을 출시했다. 일단 서울 지역을 대상으로 벤츠 E클래스 등 3000cc급 고급차량 100대와 전문 교육을 받은 200여명의 기사로 운영을 시작했다. 내년부터 차종과 대수를 늘리고 운행 지역을 확대할 예정이다.

카카오는 내년 상반기 출시할 대리운전 앱인 ‘카카오 드라이버’ 등을 비롯해 관련 분야에서 온·오프라인 연결(O2O) 서비스를 계속 늘려나갈 계획이다. 향후 1~2년간 분기마다 새로운 O2O 서비스를 1~2개씩 내놓는 게 목표다.

검색 콘텐츠 광고도 ‘온디맨드’ 시대

카카오는 온디맨드 개념을 콘텐츠 생산에 접목한 다양한 서비스를 내놓고 있다. 임 대표는 “현재 인터넷 모바일 서비스들이 제공하는 콘텐츠 검색, 게임, 광고 등 모든 것을 온디맨드의 관점에서 재해석해 보면 이용자에게 더 좋은 경험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며 “여기서 또 한 번 진화하면 ‘너 혹시 지금 이거 필요하지 않았어’라는 추천 개념이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했다.

카카오 검색은 단순한 정보 탐색을 넘어 검색 결과로 얻은 정보가 구매 예약 채팅 등으로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실험을 진행 중이다. 카카오는 최근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경기 때 카카오 검색과 카카오TV, 카톡 오픈채팅(링크 클릭만으로 단톡방 참여)까지 연동했다. 검색창에 ‘한국시리즈’ 등 키워드를 입력하면 TV 중계 화면과 팀별 단톡방 등에 곧바로 접속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콘텐츠 기획부터 제작 과정까지 독자가 적극 참여하는 스토리펀딩도 지난 1년간 200여개 프로젝트로 30억원이 넘는 후원을 이끌어냈다. 고교 입시 정보를 제공한 ‘중학생 엄마가 알아야 할 입시’ 프로젝트는 후원자들과 함께 정보가 필요한 학교를 선정하고 취재 결과를 콘텐츠로 연재했다. 최근 ‘벌거벗은 영웅 소방관’ 프로젝트는 그동안 온라인 등에서 소방관의 처우를 개선하자는 활동을 펼친 대학생들의 주도로 연재가 시작됐다. 이들에 대한 격려와 지지가 모여 2000만원 이상의 후원금이 쌓였다.

광고도 마찬가지다. 온디맨드 시대의 광고는 이용자가 원하는 것을 미리 예측하고 추천해주는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카카오스토리에서는 이용자의 성별 연령 지역 취미 관심사 등에 따라 각기 다른 광고를 노출한다. 카카오톡 플러스친구도 이용자가 관심을 갖고 있는 브랜드 소식이나 쇼핑 정보, 좋아하는 스타, 잡지, 방송 등의 콘텐츠를 직접 선별해 받아볼 수 있다. 이용자 입장에서는 광고라기보다 맞춤형 정보를 추천받는다는 느낌이 들 정도라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카카오는 인터넷은행 사업에도 진출했다. 지난달 금융위원회로부터 인터넷전문은행 예비인가를 획득했다. 한국투자금융지주 등과 손잡고 이르면 내년 하반기 카카오톡에서 바로 송금·결제가 가능한 모바일 은행을 선보일 예정이다. 금융 서비스까지 완결된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겠다는 게 카카오의 목표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