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경찰서 소속 수사관들이 가락동 송파서 사무실에서 최근 10년간 관할 지역에서 일어난 사기사건을 분석하고 있다. 송파경찰서 제공
서울 송파경찰서 소속 수사관들이 가락동 송파서 사무실에서 최근 10년간 관할 지역에서 일어난 사기사건을 분석하고 있다. 송파경찰서 제공
서울 송파구에 사는 주부 장모씨(55)는 올해 남편이 새로운 사업을 준비하며 모아둔 3억2000만원을 날렸다. 2013년 지역 동호회에서 퇴직 교사 출신 이모씨(62)를 만난 게 화근이었다. 그는 “남편이 변호사라 정보가 많은데 생수사업에 투자하면 배당금을 많이 받을 수 있다”는 이씨의 말만 듣고 돈을 넘겼다. 이씨는 장씨 외에도 7명의 주부를 속여 모두 7억9000만원을 가로챘다 지난 2월 구속됐다. 피해자에는 자녀 결혼자금(1억8000만원)을 맡긴 송모씨(59), 남편 병원 치료비(1500만원)를 뜯긴 조모씨(56) 등이 포함됐다. 이씨의 남편은 변호사가 맞지만 최근 투자 실패로 큰 빚을 져 이씨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50·60대를 상대로 한 사기사건이 크게 늘고 있다. 단일 경찰서로는 가장 많은 관할 인구(67만명)를 거느리고 있는 서울 송파경찰서에서 지난 10년간 발생한 사기사건을 분석한 결과다. 송파서는 민간 데이터분석 전문업체인 알렉스앤드컴퍼니와 함께 사기 범죄의 피의자와 피해자 통계를 분석했다. 사기 피해금액도 다른 나이대에 비해 컸다. 가해자 역시 피해자들과 비슷한 50·60대가 많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장광호 송파서 경제범죄수사과장은 “50·60대는 직장 퇴직과 은퇴 등으로 삶이 한 차례 전환기를 맞는 시기다 보니 여유자금이 많다”며 “그만큼 사기 피해액도 불어나는 것으로 분석돼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피해자·피의자 모두 50·60대 ↑

27일 송파서에 따르면 송파구에서 발생한 사기사건 피해자 중 50대가 차지하는 비중은 2005년 9.2%에서 지난해 13.8%로 높아졌다. 같은 기간 60대 피해자 역시 4.8%에서 6.2%로 뛰었다. 2005년부터 2014년까지 송파구 사기 피해자 3만1937명을 분석한 결과다.

해당 연령대가 사기 범죄를 저지른 비중도 커졌다. 2005년 15.2%였던 50대 사기 피의자 비중은 지난해 25.9%까지 높아졌다. 60대 이상 피의자 비중도 4.7%에서 9.5%까지 높아졌다.
[경찰팀 리포트] 50·60대 등치는 사기 '기승'…"동년배가 노후자금 노려"
빅데이터 분석 결과 사기사건의 피의자와 피해자는 비슷한 연령대였다. 2014년 1월부터 올해 9월까지 사기혐의 신고 3257건 중 피해자와 피의자의 나이 차이가 열 살 이내인 사건이 61.2%에 달했다. 50대가 50대를 상대로 사기를 친 사건은 301건으로 동일 연령대 사건 중 가장 많았다. 장 과장은 “사기범들이 동호회 등 비슷한 연령대가 속해 있는 집단에서 범죄 대상을 노린다는 방증”이라고 설명했다.

50·60대를 대상으로 한 사기사건은 피해 금액이 컸다. 같은 기간 송파서에서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 사기사건(984건)을 분석한 결과 피의자가 50대일 때 피해자의 평균 피해액(1억2137만원)이 가장 많았다. 40대(1억820만원)와 60대(1억82만원)가 뒤를 이었다.

“투자에 앞서 변호사 공증 등 받아놔야”

50·60대를 대상으로 한 사기범들은 고수익 투자상품에 투자해 노후자금을 마련하려는 은퇴 예정자나 주부를 노린다. 은퇴자들의 초조한 마음을 악용하는 것이다. 서울 양천경찰서는 이달 초 “이자와 원금을 100% 보장하는 투자 아이템이 있다”며 159명으로부터 343억원을 받아 가로챈 유사수신 사기단을 적발했다.

구속된 정모씨(57·여) 등 일당 20여명은 “부동산·테마공원·수목장 등에 투자하면 지분에 따라 수익의 20%를 배분하고 원금은 6개월 뒤 돌려주겠다”고 약속해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피해자 중에는 집까지 날린 이들도 있었다.

지난달 송파서는 “청와대 직속 비자금 관리 기관인 이른바 ‘창’의 관리인”이라고 소개하고 금괴를 팔겠다는 명목으로 피해자들에게 37억여원을 가로챈 일당을 검거했다. 김모씨(59) 등 일당은 “창에는 일제강점기 때부터 내려온 골드바(금괴) 수백개가 있다”며 “저렴한 가격에 사서 되팔면 큰 이익이 남는다”고 속였다. 미리 도금한 가짜 금괴를 만들어 사진으로 보여주기도 했다. 사업가와 회계사, 대학교수, 대기업 임원 등이 거액을 맡겼다 돈을 날렸다.

장 과장은 “한국에서는 투자에 앞서 계약서를 공증받는 문화가 정착돼 있지 않다”며 “단순히 계약서나 영수증만 쓸 것이 아니라 계약 내용을 담보할 수 있도록 해야 사기가 근절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동현 기자 3co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