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손자와 손정의가 만나 탄생한 25문자 '손의 제곱법칙'에 성공 전략 담겼다
다신교를 믿는 로마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긴 사람은 죽어서 신(神)이 됐다. 그러나 신전은 정치가와 군인들의 차지였고 상인들은 꿈도 꾸지 못했다.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전통이 강한 일본에서도 상인의 지위는 마찬가지였지만 일본 경제에 큰 발자취를 남긴 마쓰시타 고노스케(1894~1989)는 ‘경영의 신’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책마을] 손자와 손정의가 만나 탄생한 25문자 '손의 제곱법칙'에 성공 전략 담겼다
현존하는 인물 중에서는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 명예회장과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신전에 근접해 있다. 이나모리 회장에게 아메바 경영이 있다면 손 회장에겐 제곱경영이 있다.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마쓰시타정경숙을 세워 인재를 양성한 것처럼 손정의는 소프트뱅크 아카데미아를 설립해 다음 세대 지도자를 육성하고 있다.

마쓰시타와 이나모리가 산업화 시대의 상징이라면 손정의는 글로벌 정보혁명의 아이콘이다. 1957년생인 그는 1955년생인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와 함께 20세기 후반 정보기술(IT) 산업 성장의 주역이었고 현재 이들 중 유일하게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인 중국 알리바바의 최대주주라는 점에서 미국에서 아시아로 중심이 이동하는 관련 산업의 주역임을 알 수 있다.

소프트뱅크는 지난해 NTT, 도요타에 이어 일본 역사상 세 번째로 영업이익 1조엔을 넘어섰다. 창업 후 33년 만에 거둔 성취는 손정의가 20대 초반 일찍이 확립한 세계관과 인생관, 전략전술과 리더십의 산물이다. 그는 벤처기업가로 도약하던 시절 예기치 않게 닥친 병마와 싸우며 절망과 고통의 병상에서 오다 노부나가, 사카모토 료마 등 일본의 역사적 영웅들의 삶과 중국 손자병법에서 용기와 지혜를 얻어 자신의 관점을 ‘25문자’로 압축했다. 손자병법 저자와 자신의 성씨가 같은 손(孫)이라는 점에 착안해 ‘손의 제곱법칙’으로 이름 지은 25문자는 이후 그가 인생계획을 세우고 미래를 바라보는 전략적 관점에서 사업을 이끌고 사람을 대하며 조직운영 시스템을 구성하는 기본 프레임이 됐다.

그는 ‘50대에 사업을 완성하고 60대에는 다음 세대에 사업을 물려준다’는 인생 계획에 따라 53세인 2010년 7월 소프트뱅크 아카데미아를 열었다. 그룹사 직원은 물론이고 공개 모집을 통해 외부 지원자도 받는 학교의 교장으로 취임했다. 손정의는 개교식 특별 강의에서 ‘손의 제곱법칙’을 소개했다. “지금까지 저는 온갖 경험을 했으며 시련도 많이 겪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25문자를 달성하면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다. 후계자가 될 수 있다. 진정한 통치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그런 힘을 가진 25문자입니다.”

손의 제곱법칙은 손자병법의 핵심 내용 14문자와 손정의가 창작한 11문자를 합친 25문자다. 도입은 손자 시계(始計)편 도천지장법(道天地將法)이다. 뜻을 세우고, 천시를 얻고 지리를 얻은 다음 우수한 부하를 모으고 지속적으로 승리하는 시스템을 구축한다는 의미다. 다음은 손정의가 창작한 10문자다. 정정략칠투(頂情略七鬪). 비전을 선명하게 그리고, 정보를 최대한 모으면서 죽을 힘을 다해 전략을 궁리하고, 70% 승산이 있는지 파악하고, 70% 승산이 있다면 과감하게 싸운다는 뜻이다. 일류공수군(一流攻守群)은 손정의 경영관의 정수다. 철저히 1등에 집중하고 시대의 흐름을 재빨리 읽고 행동하며, 다양한 공격력을 단련하고, 온갖 리스크에 대비해 수비력을 갖춘 뒤 단독이 아닌 집단으로 싸운다는 의미다.

손의 제곱법칙은 손자 시계 5문자와 군쟁 4문자, 마지막으로 손정의가 창작한 해(海)로 마무리된다. 해는 패한 상대를 포용한다는 의미다. ‘싸움이 끝난 뒤에는 평정이라는 작업이 남아 있다. 넓고 깊은 바다가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평정할 때 비로소 싸움이 완결되는 것이다. 최종적으로는 질서를 가져오고 공격한 나라 또는 시장을 치유하는 과정까지 끌고 가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한다.

1981년 창업 이후 컴퓨터, 인터넷, 스마트폰, 전자상거래, 공유경제로 진화하고 확장하는 IT산업의 주요 변화를 주도적으로 이끌어온 최첨단 분야 글로벌 리더의 경영철학이 2500년 전 손자, 500년 전 오다 노부나가 병법의 기본개념에서 출발했고, 현실에서 적용되는 실질적 원칙이라는 점이 놀랍다. ‘옛것을 익히고 그것을 미루어서 새것을 안다’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이 단순한 격언이 아니라 살아있는 교훈임을 깨닫게 한다.

손정의와 같은 글로벌 슈퍼스타가 화제의 중심에 서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에 대한 신문과 잡지 기사, 관련 도서들이 쏟아져 나오게 마련이다. 저마다의 장단점이 있겠지만 단편적 측면만 부각시키는 경우도 적지 않다. 언론인 출신인 이타가키 에이켄이 쓴 《손정의 제곱법칙》은 손정의 철학의 정수이자 실질적 경영원칙이고 나아가 후세대를 육성하는 기본정신인 25문자를 사업 전개의 중요한 분기점에 대입해 간결하고 이해하기 쉽게 입체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이는 저자가 1990년 30대 초반의 벤처기업가 손정의를 만난 이후 지속적으로 교류하면서 글로벌 리더로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본 25년의 시간이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영자는 물론 일반인도 이해하고 공감하며 사업과 인생의 교훈으로 삼을 수 있는 내용이다.

김경준 < 딜로이트컨설팅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