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노 간 국내 섬유기계 "중국 추격 실감"
섬유기계 분야 세계 전시회인 ‘이트마(ITMA) 밀라노 2015(사진)’가 지난 11일부터 19일까지 일정을 마치고 막을 내렸다. 이탈리아 이트마 사무국은 23일 “이번 전시회는 전 세계 46개국에서 1700여개 기업이 참가해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1951년부터 4년마다 유럽 5개 국가를 번갈아 가며 여는 국제섬유기계전시회(ITMA)는 원사, 직물, 염색 등 분야별 섬유기계류가 총망라돼 이 분야의 세계적 경향을 읽을 수 있는 전시회로 손꼽힌다.

밀라노 간 국내 섬유기계 "중국 추격 실감"
이번 전시회에서는 섬유업체들이 전통적·노동집약적 사양산업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기 위해 저비용, 고효율의 섬유기계를 대거 출시한 게 특징이다. 가장 눈에 띈 것은 염색 분야로 303개 업체가 부스를 차렸다. 섬유산업은 세척, 표백, 염색 등의 공정에서 평균 1㎏의 섬유 원료를 가공하는 데 100~150L의 물이 필요하다. 네덜란드 다이쿠는 물 대신 이산화탄소를 사용하는 염색기계를 선보였다. 이 회사는 “염색과정에서 물은 물론 화학물질도 전혀 사용하지 않으며 기존 기계보다 두 배나 빠른 속도로 공정처리가 된다”고 설명했다.

디지털 섬유염색 기술도 주목을 받았다. 염료를 사용해 원단에 물을 들이는 방식이 아니라 종이 프린터처럼 바로 찍어내는 기술로 컴퓨터에 디자인이나 사진을 넣으면 염색이 가능하다. 아라미드와 탄소섬유를 활용한 소방복, 방탄복을 비롯 자동차·항공기 등의 첨단 부품소재들도 출시했다.

중국의 약진도 두드러져 유럽 일본 미국 등이 주도해온 섬유기계시장의 판도 변화를 예고했다. 참여 업체만 200여개사로 이트마 전시 면적 10만8000㎡ 가운데 중국이 차지한 부스 면적만 5880㎡로 비유럽 국가 중 최대 규모였다. 홍화그룹은 시간당 수천m 인쇄가 가능한 ‘슈퍼 패스트 섬유 인쇄 기계’를 선보였다.

퐁스그룹도 시간당 1000m 이상 인쇄가 가능한 디지털 프린트 기기를 내놨다. 이 회사는 유럽의 섬유기기 제조사인 티스사 등을 인수합병하며 종합 염색가공기 제조업체로 규모를 키우고 있다. 이에 반해 한국 업체는 동아기계, 풍광, 동원롤, 디지아이, 일진에이테크 등 30여개사로 전체 참여 업체의 2%에도 못 미쳤다. 완제품 대신 부품과 카탈로그를 전시하는 수준에 그쳐 세계 6위 수준의 섬유산업 규모를 갖춘 한국 위상에 비해 초라했다는 평가다.

섬유제조기계 완제품을 선보인 일진에이테크의 전영도 회장은 “이대로 가다가는 후발주자인 중국에 섬유기계시장을 내놓아야 할 처지”라고 우려했다. 이 회사가 출시한 제품은 석유화학 원료에서 실을 뽑아내는 폴리에스터 초고속 방사기술과 초고속 권취·압출기술 등을 복합한 제품이다.

전 회장은 “섬유기기 완제품을 양산하는 데 30년의 세월이 흘렀다”며 “정부와 대기업의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밀라노=하인식 기자 ha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