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좀비기업'을 위한 변명
감독당국이 다시 기업구조조정에 총대를 메고 나섰다. 심각해지고 있는 기업부실이 국민경제를 불안하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적인 경기침체와 환율전쟁, 중국기업들의 덤핑공세가 주원인인 최근의 경제침체 상황은 단기간에 헤어나기 어렵다. 산업의 생명주기도 과거와는 달라졌다. 구조조정도 달라져야 한다. 과거에는 채무중심의 구조조정이었다면 지금은 산업이나 사업부문에 대한 강력한 구조조정이 뒷받침돼야 한다.

먼저 회생이 어려운 ‘좀비기업’과 살려야 할 구조조정기업을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좀비기업은 영업에 심각한 문제점이 있고 회복전망이 불투명한 기업으로 매각 또는 청산을 통해 신속하게 퇴출시켜야 한다. 반면 구조조정기업은 위기상황을 차단해 회생시켜야 할 기업이다. 한시적으로 영업에 문제가 있어 이자보상배율이 1배 미만인 기업과 1배 이상이지만 만기도래하는 차입금상환 문제로 유동성위기에 몰린 기업을 말한다. 이들은 채무조정이나 사업구조조정을 통해 회생시켜야 한다. 적극적으로 자구책을 실행하는 기업도 살려야 할 구조조정기업이다.

기업위험평가에서도 겉으로 드러난 재무 관련 지표만을 구조조정의 칼로 써서는 안 된다. 지속가능 판단지표인 이자보상배율은 구조조정지표이지, 좀비기업 선정지표로서는 유용성이 낮다. 이자보상배율이 1배 미만이라고 해서 무조건 퇴출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문제가 있다. 좀비기업은 기업의 핵심활동인 미래의 영업활동을 평가해서 결정해야 한다. 현재의 문제보다도 문제의 해결가능성이 구조조정의 핵심과제로 자리잡아야 한다. 영업부문이 적자를 내더라도 단기간에 흑자 전환이 예상되는 정상화 가능기업은 오히려 적극 지원해야 한다. 작년까지 2년 연속 영업이익에서 적자를 내면서 289억원과 672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낸 기업이 올 들어서는 그동안의 구조조정과 신규투자로 200억원이 넘는 이익을 내는 회사로 변신한 중견기업도 있다.

기업평가는 현재가 아닌 미래를 예측하고 변화가능성을 판단하는 것이다. 위기상황에서는 재무지표보다는 산업별 특성이나 신성장산업 진출, 신규투자, 경영능력, 자구노력 동참의지 등을 기반으로 한 질적 지표를 중시해야 한다. 재무지표를 의사결정에 사용할 때도 다시 생각해야 한다. 재무지표는 예측가능한 경제상황에서 안정된 회사를 평가할 때만 유용하다. 통찰력을 필요로 하는 위기상황에 처한 기업을 평가할 때는 특히 문제가 많다. 죽일 기업은 살리고 살릴 기업은 죽이는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외환위기 때 구조조정지표로 부채비율 200% 기준이 제시됐지만 이는 근본적인 기업구조조정이 아닌 겉치레 구조조정이었다. 전통적 재무지표는 정보이용자가 의사결정에 맞게 재구성해 사용하라는 전제조건이 붙어 있다. 최근 거론되는 이자보상배율이나 영업활동현금흐름 지표도 수정해서 사용하라는 얘기다.

벤처기업이나 중소기업 평가는 더욱 달라야 한다. 영업활동에서 적자가 난다고 해서 모두 다 버려서는 안 된다. 벤처캐피털이 투자기업을 발굴하듯 재무제표보다는 시장경쟁력이나 기술력과 함께 경영진 등 핵심인력에 대한 평가비중을 높여야 한다. 현장점검을 하고 경영자에 대한 인터뷰도 해야 한다. 위기상황에 처한 기업은 컴퓨터로 계산한 지표변화보다 지표변화를 가져온 이유를 더 중시해야 한다.

구조조정 성공여부는 신용위험평가를 통한 옥석 가리기가 핵심이다. 기업은 리스크를 친구 삼아 경영한다. 사양산업은 없고 사양기업만 있다는 말도 기억하자. 겉으로 나타난 숫자의 함정에 빠지지 말고 좀비기업을 제대로 찾아내야 한다. 현실화된 부실기업 처방과 함께 추가적인 구조조정기업 발생을 최소화할 비책도 준비할 때다.

이정조 < 리스크컨설팅코리아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