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미쳤거나 천재거나'
천재와 광인, 범죄자의 유전자는 타고나는 것일까. 신념과 광기의 경계는 무엇일까. ‘천재론’과 ‘범죄인론’으로 유명한 정신의학자 체사레 롬브로조(1835~1909)는 “천재성과 광기가 공통의 뿌리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범죄 성향도 유전적 형질이라고 했다. 그는 범죄자들이 생물학적으로 열성인자를 지녔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다윈의 진화론을 들이댔다.

이탈리아 베로나의 부유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남달리 똑똑했다. 여러 대학에서 문학, 고고학, 의학 등을 공부했고 군의관으로 근무하며 임상경험도 많이 쌓았다. 정신병자 수용 시설 책임자와 토리노대 법의학과 교수 등으로 활동하면서 범죄자 5900여명의 신체 특성을 연구해 범죄인류학을 창시한 것도 그였다.

그의 ‘생래적 범죄인설’은 너무 과격해서 황당해 보이지만 당시엔 큰 관심을 끌었다. 그에 따르면 범죄인의 신체 특징은 원시 선조로부터 격세유전된다. 범죄를 저지른 사람의 약 30%에 해당하는 선천적 범죄인은 그 유전자 때문에 필연적으로 죄를 짓게 돼 있다. 그래서 누범이나 잔혹범은 사형에 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분류대로 하자면 웃음, 사시, 왼손잡이, 소두증, 결핵 등 ‘육체적 표식’과 도덕성 결핍, 충동성, 회의성, 자기중심성, 독창성 등 ‘정신적 표식’을 드러내는 사람은 잠재적 위험군이다.

그가 살던 시기에는 우생학이 유행했다. 진화론의 영향이 컸다. 영국 유전학자 프랜시스 골턴이 쌍둥이 연구를 통해 “천재는 천재의 가계에서 태어난다”고 역설한 것도 이 무렵이다. 다윈과 외사촌간인 그는 적격자의 탄생률을 높이는 ‘인류개량’을 주장하기도 했다. 이는 훗날 히틀러의 극단적인 광기로 이어졌다. 천재와 광기는 공통이라는 유명한 명제도 이런 맥락과 닿아 있다.

롬브로조는 “천재성이 유전적 정신병의 형태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일종의 신경병이자 정신병의 특이한 발현이라는 것이다. 그가 50대 중반에 쓴 ‘천재론’에는 니체와 뉴턴, 쇼펜하우어, 루소, 파스칼, 소크라테스, 이태백 등의 사례가 나온다. 이를 통해 그는 신념과 광기의 경계선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는 사람이 곧 천재라는 걸 일깨운다.

천재들의 광기는 어둠의 역사에 함몰되기고 하고, 세계사의 전면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과거에는 미치광이로 여겨지던 특징이 현대에는 창의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천재론’ 번역본이 절판된 지 반세기 만에 다시 나왔다. ‘미쳤거나 천재거나’라는 제목의 함축미가 돋보인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