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약품 '서프라이즈'] 임성기의 'R&D 승부수'…글로벌 신약시장 연속 강타
한미약품이 또 한 번 ‘대형 사고’를 쳤다. 이번엔 지난해 매출 86조원으로 세계 1위인 존슨앤드존슨(J&J)의 제약부문 회사인 얀센이 한미약품을 선택했다. 얀센은 한미약품이 글로벌 임상 1상시험을 마친 당뇨·비만치료 바이오 신약(HM12525A)을 9억1500만달러에 사들였다. 3월 일라이 릴리(미국), 6월 베링거잉겔하임(독일), 11월 사노피아벤티스(프랑스)에 이어 얀센까지 글로벌 다국적 제약사들이 한미약품의 신약 파이프라인(신약 연구물질)에 잇따라 거액을 ‘베팅’한 것이다. 한미약품의 신약 기술력과 임성기 회장의 승부수가 이끌어낸 작품이라는 평가다.

○망하기 직전 위기가 자극제

[한미약품 '서프라이즈'] 임성기의 'R&D 승부수'…글로벌 신약시장 연속 강타
한미약품은 2009년 위기에 내몰렸다. 기술력이 없어 의사와 약사들에게 리베이트로 승부했다는 눈총을 받던 차에 쌍벌제가 도입된 것. 의사와 약사 모두를 처벌하는 제도인 쌍벌제가 도입되는 원인을 제공했다는 오해를 받았다. 의사들이 한미약품이 생산한 약 처방을 급격히 줄였다. 6000억원을 넘던 매출이 2년 동안 1000억원이 줄었다. 영업이익은 3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한미약품 고위 관계자는 “이대로 가다간 자칫 망할 수 있겠다는 위기감이 팽배했다”고 했다. 병원들의 집단 처방거부 사태를 임 회장은 반전의 기회로 돌려놓았다. 글로벌 신약개발에 사활을 걸기로 한 것이다. 임 회장은 회의 때마다 “우리 신약이 있어야 해외 시장으로 나갈 수 있다. 그래야 변화된 국내 영업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엄청난 자금을 연구개발에 쏟아부었다.

임 회장은 지금도 매일 오전 7시30분에 임원회의를 열어 신약개발 단계를 챙긴다. 궁금증이 생기면 팀장급 회의까지 소집해 설명을 들을 정도다. 임 회장의 승부근성과 준비성은 사내 안팎에서도 유명하다. 골프 입문 때는 매일 3년을 연습한 후 필드에 나가 싱글 수준의 성적을 기록했다고 한다. 30만개의 골프공을 연습장에서 치고 필드에 나간 임 회장을 보고 주변에서는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바둑을 즐기는 임 회장은 아마추어 대회에 나가 예선에서 탈락하자 프로기사로부터 레슨을 받아 다음 대회에서 우승을 하기도 했다.

한미약품 관계자는 “회사에서 글로벌 신약 동향을 가장 많이 아는 사람이 임 회장이라 임원들의 긴장도가 이만저만이 아니다”고 했다.

○다국적 제약사 협력…기술축적

118년 역사의 국내 제약업계에서 1973년 설립된 한미약품은 젊은 기업에 속한다. 임 회장의 행보는 매번 파장을 낳았다. 한미약품이 한동안 업계의 대표적인 ‘아웃사이더’로 꼽히는 이유다.

서울 종로5가의 ‘임성기 약국’에서 출발한 임 회장은 회사 설립 이후 선발 업체들을 따라잡기 위해 공격적인 영업마케팅을 전개했다. 기존 판을 흔드는 영업에 업계의 시선은 좋지 않았다. 한미약품이 업계의 ‘이단아’ 취급을 받은 이유다.

기존 질서를 깨뜨리는 임 회장의 행보는 매번 논란을 낳았다. 2004년에는 국내 제약업계 최초로 개량신약(복용 편의성을 개선한 약) ‘아모디핀’(고혈압약)을 개발, 국내 시장에서만 5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복제약 영업에 치중해온 다른 업체들에는 충격이었다. 고혈압 성분 두 개를 하나로 합친 개량신약 ‘아모잘탄’도 대형 제품으로 키워냈다.

1989년 로슈와 600만달러의 계약은 국내 제약사의 첫 기술수출 계약이었으며 1997년에는 노바티스와 당시로서는 최대 규모인 6300만달러 규모의 약물전달기술 계약을 성사시켰다.

한미약품은 2012년에는 미국 시장에서 아스트라제너카와 무려 36개월 동안 특허소송을 벌여 승소했다. 위궤양 치료제 ‘에소메졸’을 두고 아스트라제너카와 소송 끝에 지난해 미국 시장에 진출했다. ‘큰 시장’에서의 싸움은 한미약품에 무형의 자산을 남겼다. 이관순 사장은 “막대한 소송비용이 들어갔음에도 다국적 제약사의 생리를 알게 된 게 가장 큰 자산이었다”며 “미국 시장에서 다국적 제약사와 법정소송을 진행한 첫 사례였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제약사로 도약

한미약품은 개발 초기부터 임상 마지막 단계에 1000억~1500억원이 들어가는 완제품 개발보다 신약기술 이전에 초점을 맞추고 동시다발적 글로벌 임상을 진행했다. 국내 임상시험 후 해외로 진출하는 기존 업체들과 달리 한미약품은 처음부터 글로벌 해외임상을 진행했다. 최근 5년간 연구개발에 5000억원이 소요된 것도 이 같은 글로벌 임상시험 비용 때문이다.

김형호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