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소공동 롯데면세점의 ‘후’ 화장품 매장이 중국인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다. 이 매장은 크기가 33㎡에 불과하지만 월평균 100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리고 있다. LG생활건강 제공
서울 소공동 롯데면세점의 ‘후’ 화장품 매장이 중국인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다. 이 매장은 크기가 33㎡에 불과하지만 월평균 100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리고 있다. LG생활건강 제공
국내 최대 면세점인 롯데면세점 서울 소공점에서 가장 많은 매출을 올리는 매장은 어딜까. 에르메스? 샤넬? 루이비통?…. 정답은 LG생활건강의 한방화장품 ‘후’ 매장이다. 33㎡(약 10평)의 자그마한 이 매장에선 매달 100억원어치가 넘는 화장품이 팔리고 있다. 해외 명품을 포함해 이 면세점에 입점한 모든 브랜드를 압도하는 규모다.

33㎡ 매장서 月 116억 팔리는 화장품 '후'
롯데면세점 소공점의 후 매장은 지난해 12월 매출 100억원을 처음 돌파한 이후 올 1~5월에도 매달 100억원대 매출을 기록했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영향으로 6~8월에는 매출이 50%가량 뒷걸음질했지만 중국인 관광객(요우커)이 돌아오기 시작한 9월에는 사상 최대인 116억원으로 치솟았다.

면세점 화장품 매장 가운데 월 매출 1억원을 넘지 못하는 곳도 수두룩한 점을 감안하면 다른 매장 100개 몫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홍균 롯데면세점 대표는 “이만한 규모의 매장에서 월 매출이 100억원을 넘는 사례는 전 세계 면세점에서 전무후무한 일”이라고 했다.

중국 국경절 연휴 마지막날인 지난 7일 오후. 롯데면세점 소공점의 후 매장은 요우커로 북적였다. 계산대 앞에는 10여명이 줄을 서 있었다. 후의 ‘공진향 스킨·로션·크림 세트’(129달러·약 14만7000원)를 다섯 개 집어든 중국인 관광객 양리 씨(30)는 “한국에 다녀온 친구가 선물해줘 처음 써봤는데 향과 품질이 좋았다”며 “친구와 가족에게 선물하려고 여러 개를 샀다”고 말했다.

배정태 LG생활건강 부사장은 “중국 전역에 후 매장이 100여개 있지만 상하이, 베이징 등 주요 대도시별로 10개가 채 되지 않아 구입하기가 어렵다”며 “후의 높은 품질을 잘 아는 중국인들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많이 사 간다”고 설명했다.

LG생활건강이 2003년 내놓은 후는 내수시장에서는 아모레퍼시픽 설화수에 이어 ‘만년 2위’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설화수보다 매장이 두 배쯤 많다. 후는 2006년 중국 현지에 진출해 111개 고급 백화점에 입점했다. 설화수는 2011년 진출해 62개 매장을 두고 있다.

전문가들은 중국인들이 후를 좋아하는 이유로 왕후(王后)를 뜻하는 브랜드 이름과 화려한 용기를 꼽는다. 한 면세점 바이어는 “후는 병은 물론 뚜껑까지 금색 장식을 더해 화려한 이미지를 최대한 부각시킨 게 특징”이라며 “중국인이 황금색 징들로 장식된 MCM 가방에 열광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부인 펑리위안 여사도 후를 쓴다는 소문이 나면서 브랜드 인지도가 더 뛰었다.

후의 제품 중에는 주름 개선, 미백 등에 특화한 기능성 크림이 한 개에 50만원을 넘기도 한다. 이달 초 명성황후의 머리띠로 궁중문화유산인 마리삭금댕기를 그려넣은 기획세트를 내놓는 등 중국인을 겨냥한 고급 화 전략을 이어가고 있다.

후가 롯데면세점 소공점에 처음 입점한 것은 2012년 11월이다. 하지만 매출이 수직상승한 것은 1~2년 전부터다. 롯데면세점 측은 “2012년까지는 일본인 관광객이 많아 루이비통 같은 명품이 잘 팔렸다”며 “한·일 간의 외교 갈등과 엔저(低) 여파로 일본인이 줄어든 대신 중국인이 급증하면서 화장품이 큰 혜택을 봤다”고 말했다. 오랫동안 중국 현지에서 토대를 다져둔 상황에서 국내 면세점을 찾는 외국인의 주류가 일본인에서 중국인으로 바뀌면서 대박을 터뜨렸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임현우/강영연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