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벨라루스
벨라루스 사람들은 우리처럼 흰 옷을 좋아해서 ‘유럽의 백의민족’으로 불린다. 옷뿐만 아니라 집도 흰색으로 칠한다. 벨라루스라는 나라 이름 역시 ‘하얀 루스’라는 표현에서 왔다. 그래서 우리에겐 백(白)러시아로 불리기도 했다. 사람들의 피부색이 유난히 희고 미인이 많다. 팔등신 모델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벨라루스 미인대회는 50여개국에 중계될 정도로 인기가 높다.

‘하얀’을 뜻하는 형용사 ‘벨리’는 ‘남의 구속을 받지 않는’ ‘자유로운’ 등의 의미도 갖고 있다고 한다. 과거 벨라루스 북동쪽에 살던 사람들이 몽골에 항복하지 않고 끝까지 저항했는데, 이런 자유와 저항을 상징하는 말이기도 하다. 몽골 지배를 받는 지역을 ‘검은 땅’ ‘자유롭지 못한 곳’으로 불렀다니 의미가 더 선명해진다.

이 나라 사람들은 러시아와 폴란드 사이에 낀 지정학적 조건 때문에 무수히 많은 고초를 겪었다. 민족 구성은 벨라루스인이 약 80%이고,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 등이 섞여 있다. 키예프공국 붕괴 후 여러 공국으로 분할됐다가 1922년 옛 소련에 편입됐고, 소련 붕괴와 함께 1991년 독립했다. 한반도와 비슷한 면적에 인구는 약 960만명이다.

예전에는 수도 민스크를 비롯해 전국에 유대인이 많이 살았다고 한다. 19세기 말에는 러시아인보다 두 배나 많았는데 1, 2차 대전 이후 대부분 이스라엘이나 미국, 독일로 이주해 지금은 아주 적다. 그러나 유대인이 모여 살던 동네는 남아 옛 사연들을 들려주고 있다. ‘색채의 마술사’ 마르크 샤갈이 태어난 곳도 북동부 유대인 거주지인 비텝스크였다. 그는 훗날 프랑스 국적을 얻었지만, 어릴 때 살던 집은 샤갈 박물관이 돼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테니스 스타 마리야 샤라포바도 벨라루스인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영화사 MGM을 설립하고 아카데미 시상식을 제안한 루이스 마이어도 이 나라 사람이다. 명앵커 래리 킹의 고향 또한 벨라루스다. 남서부 출신의 유대인 아버지가 민스크 출신의 유대인 어머니와 결혼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그를 낳았다고 한다.

올해는 노벨문학상 수상자도 나왔다. 여성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2차 대전,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등 극적인 사건을 겪은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다큐소설로 풀어내 영예를 안았다. 다림질하다 수상 소식을 들었다는 그가 대통령의 장기집권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장면을 보니, 그 역시 자유와 저항을 중시하는 벨리(하얀, 자유로운) 핏줄인 게 분명하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