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마음이 구멍 난 아이들
사람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수많은 헤어짐과 만남을 반복한다. 입학과 졸업, 연애와 결별, 입사와 퇴직 등 셀 수 없다. 그 속에서 때로는 기뻐하고, 아쉬워하고, 가슴앓이로 밤을 지새우기도 한다.

그 많은 헤어짐 중에서 가장 가슴 아픈 건 부모와 자식 간의 이별인 것 같다. “부모는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있듯 대부분의 사람은 부모와 자식 간 헤어짐에서 주로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은 부모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부모와의 헤어짐 때문에 자녀들은 가슴에 구멍이 뚫린다는 걸 가정법원에 오고 나서야 알게 됐다.

법원 아동 상담실에서 만난 아홉 살 어린이 A는 엄마의 얼굴을 도깨비로 그렸다. A가 여덟 살 때 엄마는 아빠와 심하게 다툰 뒤 집을 나갔다. A는 엄마를 보지 못한 채 아빠로부터 매일같이 엄마에 대한 욕을 들으며 지냈다. 1년 후 아빠는 엄마를 상대로 이혼소송을 제기했다. 담당 법관은 A에 대한 아동상담과 함께 A와 엄마를 만나게 하려 시도했지만, A와 A의 아빠는 A의 엄마를 보지 않으려 했다.

A의 심리검사 결과 A는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매우 컸다. 그러나 자신을 양육하고 있는 아빠의 눈치를 봤고, 엄마에 대한 아빠의 분노를 고스란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있었다. 아빠와 함께 있을 때일수록 엄마에 대한 분노를 더욱 크게 표출했고, 아빠가 하는 말을 그대로 따라했다. “엄마는 나를 버리고 도망갔어요! 우리 엄마는 악마예요!”

법원에선 A의 엄마와 아빠에게 부모교육을 했다. 부모교육을 받고서야 A의 부모는 A 앞에서 서로를 욕하며 싸웠던 지난날을 후회했다. 또 A의 아빠는 자신이 A와 엄마의 관계를 단절시키면서 A의 마음에 큰 구멍이 나게 했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이제 A가 그린 그림 속 엄마는 더 이상 도깨비가 아니다. 천사처럼 환하게 웃고 있다. A의 아빠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결혼할 때 진작에 부모교육을 받았다면 우리 아이가 이렇게 되지 않았을 텐데요.”

부부가 싸우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잘 싸우는 방법을 알고 싸운다면 적어도 A와 같이 마음에 메우기 힘든 구멍이 나는 건 막을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우리 아이들은 10월의 가을 하늘처럼 푸르게 잘 자랄 것이다.

여상훈 < 서울가정법원장 shyeo@scourt.g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