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대응 주문한 구본무 "변화 흐름 꿰뚫고 경영방식 확 바꿔야"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경영진에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변화하자”고 주문했다. 글로벌 경기가 둔화하고 중국 업체들이 맹추격하는 상황에서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절박감을 표현했다는 분석이다.

구 회장은 6일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에서 열린 그룹 임원세미나에서 “변화의 흐름을 정확히 읽어 기회를 잡고, 한 번 잡은 기회는 반드시 우리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세미나에는 구 회장을 비롯해 강유식 LG경영개발원 부회장, 구본준 LG전자 부회장, 이상철 LG유플러스 부회장,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 박진수 LG화학 부회장 등 최고경영진과 임원 300여명이 참석했다.

“변화 흐름을 정확히 읽어 기회 잡자”

구 회장은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은 중국 경기 둔화와 함께 더욱 커지고, 글로벌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는 등 경영 환경이 급속히 어려워지고 있다”며 “냉엄한 현실을 인식하고 철저히 대응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를 위해 “우리의 사업 방식과 연구개발(R&D), 구매, 생산, 마케팅 등 주요 경영활동을 재점검해 개선해야 한다”며 “변화하는 환경에 맞지 않는다면 근본적으로 그리고 과감하게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LG전자 등 주력계열사가 대외 악재로 실적이 부진한 상황에서 그룹에 변화를 촉구한 메시지로 풀이된다.

실제로 LG그룹은 대대적인 조직 정비 작업을 벌이고 있다. LG전자에서 스마트폰을 담당하는 MC사업본부가 대표적 예다. MC사업본부를 이끌고 있는 조준호 사장은 소속 임직원의 최대 20%를 새로운 부서로 재배치하고 있다. 사업개발도 기존 디자인, 선행개발 등으로 나뉘어 있던 방식에서 한 팀이 특정 제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는 ‘프로젝트 매니저’ 방식으로 개편하고 있다.

신사업 발굴에도 주력한다. 구본준 부회장은 직접 자동차 부품 등 기업 간 거래(B2B) 사업 확대를 진두지휘하고 있다. 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B2C)에서는 중국 업체의 추격이 거센 데다 실적도 대외 변수에 따라 크게 오르락내리락하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올해 LG전자 B2B 사업 매출이 4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보고 있다.

LG화학은 석유가공제품보다는 2차전지, 기초 소재 등 원천기술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LG디스플레이도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등 차세대 디스플레이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중국 업체 등 추격자들이 ‘베끼기’로 따라올 수 없는 기술을 확보하겠다는 취지에서다. 구 회장은 “어려운 가운데 성장의 기회는 분명히 있다”며 “변화의 흐름을 정확히 읽어 기회를 잡고, 한 번 잡은 기회는 반드시 우리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과거 반성하고 미래 대비해야”

외부 강의와 별도로 상영된 동영상도 ‘위기 대응’ 및 ‘변화’에 초점을 맞췄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는 ‘징비록에서 배우는 리더십’을 주제로 강연했다. 징비록은 조선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류성룡이 집필한 임진왜란 전란사다. 왜 임진왜란이 일어났고 조정에선 무슨 실수를 했는지 등을 상세히 기록했다. 한 교수는 징비록 내용을 소개하며 “기업 경영에서도 미래를 준비하는 혜안을 얻고자 한다면 우선 과거에 대한 철저한 통찰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후지필름이 선제적인 대응을 통해 사업 재편에 성공한 사례도 공유했다. 후지필름은 2000년대 초 기존 주력사업인 필름 사업이 저물고 디지털 카메라가 부상하는 위기를 맞았다. 이 회사는 기존 기술을 심화 발전시켜 재빨리 LCD(액정표시장치)용 광학필름인 ‘TAC(tri-acetyl-cellulose) 필름’을 개발해 세계 시장을 석권했다. 또 필름의 원재료인 콜라겐 기술을 활용, 화장품 시장에 진출해 ‘대박’을 터뜨리기도 했다. 위기 때 스스로의 사업역량을 세심히 파악해 미래 먹거리를 찾은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LG 임원들은 후지필름처럼 미래 먹거리를 재빨리 찾아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남윤선/정지은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