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보는 글로벌 인재포럼 2015] 스티븐 러바인 칼아츠 총장 "정해진 선로에서 벗어난 경험이 독창적인 예술혼 꽃피우죠"
‘토이스토리’ ‘몬스터 주식회사’ ‘월-E’ 등 픽사(Pixar) 애니메이션에는 A113이라는 숫자가 자주 등장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예술대(CalArts) 애니메이션학과 1학년 교실인 A113 강의실에서 따온 것이다. 팀 버튼과 존 래스터, 브래드 버드와 피트 닥터 등 내로라하는 애니메이션 제작자들이 이 강의실에서 공부했다.

팀 버튼은 학창시절 말수도 없고 수업도 거의 듣지 않는 학생이었다. 대신 그는 영화 세 편을 동시에 제작하고 있었다. 존 래스터는 컴퓨터가 3차원(3D) 애니메이션을 제작할 수 있기 이전부터 3D 애니메이션에 호기심을 가진 학생이었다. ‘스타워즈’ 시리즈 특수효과 감독을 맡았던 로버트 발라크도 칼아츠 출신이다.

이 학교에서 27년간 총장을 하고 있는 스티븐 러바인 총장은 6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칼아츠가 다양한 인재를 배출할 수 있었던 이유로 ‘모험가 정신’을 꼽았다. 그는 학생들을 창의적인 모험가로 키우기 위한 효과적인 방안으로 ‘인종과 문화의 다양성’을 꼽았다. “인종과 문화의 다양성이 클수록 창조적인 콘텐츠가 많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는 “대학 교육을 세계화하는 것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며 “외국인 학생 비율을 전체의 35~40%까지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오는 11월3~5일 서울 삼성동 그랜드인터컨티넨탈파르나스호텔에서 열리는 ‘글로벌 인재포럼 2015’에 참석, 4일 기조세션-2(학생 이동과 고등교육의 국제화) 주제 발표를 통해 대학의 국제화 방안에 대한 의견을 제시할 예정이다.

▷칼아츠 동문들이 ‘제2의 애니메이션 부흥기’를 이끌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1961년 개교 이래 칼아츠 출신 제작자들은 만화영화 분야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1985년부터 지금까지 칼아츠 출신 제작자들이 박스오피스 누적 수익만 340억달러(약 40조1710억원)에 달합니다. 칼아츠는 학생들에게 모범생이 되는 대신 모험가가 되라고 강조합니다. 창조를 위한 위험 감수도 적극 장려합니다. 학생들이 열정적으로 노력한 경우 실패한 프로젝트에 대해 절대 불이익을 주지 않습니다. 그들의 성공은 ‘모험’에서 시작됐습니다. 칼아츠 동문인 피트 닥터의 작품이자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픽사의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이 그 사례입니다. 기쁨 슬픔 짜증 등 감정이 의인화된다는 설정은 지금까지 어떤 영화에서도 시도하지 않았던 아이디어입니다.”

[미리 보는 글로벌 인재포럼 2015] 스티븐 러바인 칼아츠 총장 "정해진 선로에서 벗어난 경험이 독창적인 예술혼 꽃피우죠"
▷27년간 칼아츠 총장을 하고 있습니다. 중심에 둔 교육철학은 무엇입니까.

“국제화된 교육 환경은 신선한 아이디어와 창조적 사고를 이끌어냅니다. 칼아츠는 문화적 다양성을 바탕으로 세계적으로 의미 있는 콘텐츠를 제작하는 데 전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현재 1450명의 학생 중 18%가 외국인 학생입니다. 외국인 학생 비율을 몇 년 안에 35~40%까지 늘리는 것이 목표입니다. 해외 기관과 국제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운영 중입니다. 월트디즈니 중국 지점과 멕시코 내 주요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인 에스투디오스애니마스(Estudios Animas) 등을 협력기관으로 두고 있습니다.”

▷문화적 다양성이 어떤 경로로 창의적 인재 양성에 영향을 미치나요.

“독창적인 예술가를 키우기 위해 꼭 필요한 것 중 하나가 ‘정해진 선로에서 벗어난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술가가 살고 있는 문화적 배경에서 완전히 벗어나 새로운 경험을 마주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중국의 주요 무용단 중 하나인 베이징댄스시어터를 이끌고 있는 칼아츠 출신 안무가 왕위안위안이 그 사례입니다. 그는 중국 전통무용을 토대로 하되 그 안에 미국식 현대무용의 안무를 차용, 중국 무용계에 새 바람을 불어넣었습니다. 한국의 음악감독 박칼린 역시 칼아츠에서 서양음악을 전공한 뒤 한국에서 국악을 전공하는 등 두 장르를 접목해 성공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장르 간 협업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월트 디즈니가 칼아츠를 세울 때 내건 슬로건은 ‘모든 예술은 한 지붕 아래 있다’였습니다. 만화영화를 제작하고, 놀이공원을 짓는 과정에서 디즈니는 공학기술은 결국 소리, 색, 연기, 영화 예술, 건축 등 다른 분야와 손을 잡아야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칼아츠에서 만화영화 제작자들이 연기를 배우고, 연기자들이 글쓰기를 하고, 음악가들이 전통 악기와 디지털 음악을 접목하는 등 다양한 분야를 함께 연구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칼아츠 이사인 랜디 알버트는 독립음악 프로듀서인데, 칼아츠 음악과에서 공부할 무렵 소니의 포터팩(portapak) 비디오카메라가 처음 나왔습니다. 영화과 학생들이 많이 쓰던 이 기기를 이용해 그는 뮤직비디오를 생각했고, 마침 MTV가 생기면서 그는 새로운 길을 갈 수 있었습니다.”

▷급격한 기술 발전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단순한 기술자가 아니라 창조자를 키우는 것이 목표입니다. 새 기술은 조금만 시간이 흘러도 구식이 되고 맙니다. 기술 발전을 따라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결국 콘텐츠입니다. 픽사가 승승장구하는 이유는 3D 기술을 능수능란하게 활용한다는 점도 있지만 무엇보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담아내기 때문입니다. 디즈니와 픽사의 크리에이티브 총괄 담당인 존 래스터는 아이와 같은 순수한 창작 욕구가 있는 친구입니다. 많은 아이를 입양한 덕분에 어른이 아닌 아이의 시각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최근 사람들이 겨울 왕국, 인사이드 아웃, 빅 히어로 같은 애니메이션에 열광하는 것도 결국은 그 속에 담긴 이야기 때문입니다.”

■ 스티븐 러바인 약력

△1947년 미국 위스콘신주 출생 △미국 스탠퍼드대 인문학부 졸업 △하버드대 영문학 석·박사 △1974~1981년 미시간대 조교수 △1984~1985년 뉴욕대 경영대학원 겸임교 △1986~1988년 록펠러재단 인문학연구소 부소장 △1988년~ 칼아츠 총장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