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또 다른 규제 만드는 정부
“부처 간 협업은 공직사회에서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협업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고 법률로 협업을 강제하는 것은 부작용이 뒤따를 수밖에 없는데…”. 기자와 만난 한 행정자치부 고위 관계자는 한숨을 쉬며 이같이 말끝을 흐렸다.

무슨 얘기일까. 정부는 요즘 ‘행정기관의 협업 기반 조성 및 촉진에 관한 법률’ 제정을 추진 중이다. 부처 간 협업을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은 법이다.

행자부가 내놓은 제정안에 따르면 부처 간 협업 대상이 되는 사무 범위가 정해지고, 협업 관련 갈등을 심의·조정할 대통령 소속 행정협업추진위원회가 신설된다. 위원회는 공무원이 부처 간 협업을 게을리하는 등 부당한 사실을 발견하면 감사원에 감사를 의뢰하거나 해당 행정 기관장에게 징계를 요구할 수 있다. 해당 법안은 정부 3.0 위원회와 행자부 산하 정부 3.0 추진단에서 주도하고 있다.

이를 놓고 행자부 내부에서도 논란이 적지 않다. 우선 협업 대상이 되는 사무 범위를 규정하겠다는 것부터 말이 나오고 있다. 행정 업무의 대부분이 부처 간 협업 업무임에도 협업 대상 사무를 지정한다는 것 자체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게 정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신설 위원회가 지금의 정부 조직과 겹친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중앙부처 간 갈등 조정 업무는 국무총리실에서, 중앙과 지방정부의 갈등 조정 업무는 행정조정협의회에서 담당한다.

협업을 게을리한 공무원에 대한 처벌 규정이 모호하다는 점도 논란거리다. 구체적인 액수가 드러나는 금품 및 향응 수수 등의 비위와 달리 공무원의 협업 관련 비위를 판단하는 건 쉽지 않다.

정부 부처의 반발이 거세자 행자부는 여당 국회의원들을 설득해 연내 입법화를 추진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정부 발의에 비해 상대적으로 국회 통과가 쉬운 의원 발의를 통해 법률 제정을 강행하겠다는 것이다.

부처 간 협업은 공직사회에서 자연스럽게 정착돼야 하는 문화인데도 이를 강제하는 법을 제정하는 것은 또 다른 규제를 만드는 것과 다름없다. ‘법률 만능주의’라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강경민 지식사회부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