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곳간 어찌되건 나만 당선되면 된다"
김광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군 제대 장병들에게 법정 최저임금의 3개월치(1인당 약 300만원)를 지급하도록 하는 병역법 개정안을 지난해 12월 발의했다. 전역 장병이 연간 30만명인 것을 감안하면 한 해 1조원가량의 재정 부담이 생기는 법안이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이 법을 시행하면 내년부터 2020년까지 5조4172억원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했다.

내년 4월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세금을 깎아주겠다는 선심성 법안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 8월20일부터 9월20일까지 한 달간 국회에 의원입법으로 발의된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 7건을 살펴보면 모두 비과세·감면 혜택을 신설하거나 일몰 기한을 연장하는 내용이다.

급증한 의원입법…포퓰리즘 심해져

국가 빚이 늘어나면서 재정 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지만 국회는 ‘나몰라라’다. 나라 곳간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 입법’을 쏟아내고 있다. 19대 국회 들어 지난달 18일까지 국회의원들이 발의한 법안 수는 1만5077건으로 18대 국회보다 23.4% 늘었다. 이들 법안 중 여론과 시류에 편승한 포퓰리즘 입법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특정 지역표를 의식한 법안 발의도 많다. 배재정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지난 6월 부산국제영화제 및 국제영상콘텐츠밸리 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발의했다. 이 법은 정부가 부산국제영화제 개최와 국제 영상콘텐츠밸리 조성을 위해 일정액 이상의 예산을 지원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치권에선 내년 총선에서 부산 출마를 노리고 있는 배 의원이 지역 민심을 사기 위해 이 같은 법안을 제출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신환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 6월 발의한 변호사시험법 개정안은 2017년을 끝으로 폐지되는 사법시험을 2018년 이후에도 유지하는 내용을 담았다. 고시촌이 몰려 있는 서울 관악을이 오 의원의 지역구다.

반시장·반기업 입법 발의 건수도 느는 추세다. 새누리당은 면세점 매장의 20%를 중소·중견기업 제품에 할당하도록 하는 내용의 관세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값비싼 수입 의류나 잡화 등을 백화점 등보다 20~30% 싸게 파는 면세점의 고유 장점이 약해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민병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기업 임원 중 연봉 공개 대상을 현행 등기 임원에서 미등기 임원으로까지 확대하는 내용의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지난해 4월 발의했다. 같은 당 김기준 의원도 올해 1월 미등기 임원이라도 보수총액이 상위 5명에 속하면 연봉을 공개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 개정안을 냈다. 대기업 총수들이 등기 임원에서 물러나자 공개 대상을 미등기 임원으로까지 확대하려는 것이다.

비슷한 법 우후죽순 발의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생기면 관련 법안을 쏟아내는 ‘인스턴트 입법’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가 확산된 지난 6월에 발의된 전염병 관련 법 개정안만 14건에 달했다. 시·도별로 감염병관리본부를 두도록 하는 등 내용도 비슷했다. 어린이집 영유아 폭행 사건이 터진 지난 1월에는 어린이집에 폐쇄회로(CC)TV 설치를 의무화하는 법 개정안이 쏟아졌다. 당시 국회엔 이미 비슷한 내용의 법안이 다수 계류돼 있었다.

부실 입법도 빈발하고 있다. 국회는 지난 5월 상가 세입자의 권리금을 보장하는 내용을 담은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법제사법위원회 심사 과정에서 대형 복합상가와 전통시장 상인은 보호 대상에서 제외됐다. 대규모 점포는 보호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 대규모 점포에 입점한 상인이 중소 자영업자라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상인들이 반발하자 국회의원들은 공청회를 여는 등 법 재개정에 나섰다.

김형준 명지대 정치학과 교수는 “전문성이 뒷받침되지 않은 포퓰리즘 입법은 국가 재정에 재앙과 같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며 “국회내 입법 지원 조직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