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파오·기모노·아오자이는 '글로벌 패션'…이 고운 한복만 왜?
중국 전통의상 치파오에 뿌리를 둔 패션브랜드 ‘상하이탕(上海灘)’은 ‘중국의 에르메스’로 불린다. 영화 ‘색, 계’에서 여주인공 탕웨이가 상하이탕 치파오를 입었고, 미국 할리우드 여배우들도 즐겨 찾는다. 한 벌에 100만~200만원으로 가격이 만만치 않은데도 중화권을 넘어 미국(마이애미) 영국(런던) 쿠웨이트 등의 매장에서 인기리에 팔린다.

중국의 50여개 민족의상 중 하나에 불과했지만 현대화·고급화로 명품 반열에 오른 치파오의 성공은 명절 때 한번 입을까 말까 하는 한복의 부진과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일본의 기모노는 겐조, 안나수이 등 유명 디자이너 브랜드가 영감을 얻어가는 옷이 됐다. 한복처럼 기모노도 근대화 이후 내리막길을 걸었지만 일본 정부의 체계적인 진흥책 덕분에 생산·유통 기반을 유지, 글로벌 패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베트남의 아오자이 역시 100년이 채 안 되는 역사에도 기업 유니폼, 교복 등으로 대중화해 베트남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치파오 기모노 아오자이의 성공과 달리 한복은 패션이 아닌 ‘행사용 옷’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영세한 한복업체들은 중국산 저가 제품의 공세에 밀려 생존을 위협받는 실정이다.

치파오·기모노·아오자이는 '글로벌 패션'…이 고운 한복만 왜?
다행인 점은 한복을 ‘멋진 나들이옷’으로 인식하는 20~30대가 늘고, 디자인과 독창성에 주목하는 외국인이 급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민정 한복진흥센터 진흥팀장은 “한복의 가치가 재조명받고 있다”며 “패션으로서의 한복산업 부활에 힘을 모을 시점”이라고 말했다.

상하이탕의 성공에는 세계적 명품기업의 체계적인 마케팅이 큰 역할을 했다. 까르띠에 몽블랑 등을 보유한 리치몬트그룹은 1998년 홍콩 회사로부터 상하이탕을 인수한 뒤 중화권을 벗어나 해외 매장을 적극적으로 늘렸다. 리치몬트그룹은 상하이탕을 고급스러운 소재와 디자인의 ‘럭셔리 차이니즈 드레스’로 홍보하고 있다.

일본은 기모노 제조기술 보유자를 인간문화재로 지정하고, 능력이 특히 뛰어난 사람은 ‘인간국보’로 부르며 연 200만엔의 특별보조금까지 지원한다.

기모노산업이 특히 발달한 교토에서는 매년 약 18만부의 ‘교토 기모노 패스포트(여권)’를 배포해 관광객이 기모노를 입고 다니면 다양한 할인 혜택을 준다.

전문가를 양성하는 공인시험과 학생·일반인 대상 교육을 통해 기모노문화를 보급하는 기모노컨설턴트협회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베트남의 아오자이는 1930~1940년대만 해도 일부 상류층만 입는 옷이었지만 은행 학교 관공서 호텔 등의 유니폼과 학생 교복 등으로 채택되면서 일상복으로서의 내수시장이 탄탄하게 형성돼 있다. 베트남 주요 도시에는 수많은 아오자이 맞춤매장이 관광객을 맞고 있다.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40년 회고전을 열고 있는 국내 정상급 한복 디자이너 이영희 씨는 “한복을 세계에 알려야 한다는 구호는 있지만 제대로 된 실천과 국가 지원이 뒷받침되지 않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