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칼럼] 청년 일자리는 성공적으로 파괴되었다 (1)
청년 실업을 걱정하는 한숨 소리가 넘친다. 대통령의 다급한 청년펀드 기부금도 그렇게 나왔다. 기부는 회사 돈이 아니라 개인 돈이라야 한다는 소문이 나돌면서 회장님들의 고민도 깊어진다. 그러나 일자리는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청년 일자리를 여지없이 파괴해 온 러다이트 운동은 이루 헤아리기 어렵다. 좌익정권이야 기업과 일자리를 파괴하는 것이 본업이라 하겠지만 보수정권에 들어와서도 일자리는 계속 파괴되고 있다.

지금 청년들에게는 허드렛일과 알바, 시급자리와 후미진 골목길 일자리, 내일의 기약도 없이 쓰이고 버려질 운명인 단기 비정규직 일자리만 남아 있다. 어른들은 눈높이를 낮추라고 청년들에게 말하고 있다. 그리고 소위 청춘 멘토들은 옛날에는 일자리가 많았노라고, 그래서 일자리가 없는 지금의 청년들에게 미안하다고, 그리고 그것은 자본주의 때문이라는 식의 기억상실에 정신질환자 같은 이야기를 제멋대로 지껄이고 있다.

청년 일자리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파괴되었다! 아니 지난 10여년간 대한민국 정치와 정부가 해온 일이라고는 좋은 일자리를 파괴하고, 나쁜 일자리를 보존하는 것이었다. 잘 알고 있듯이 중소기업 일자리는 지금도 꽤 남아 있다. 공단지역에서는 사람을 구하기 어려울 정도다. 골목 안쪽에는 지금도 싸구려 일자리가 많다. 도소매 음식숙박에도 일자리가 있다. 전통시장에도 그렇다. 농어촌에서는 사람을 구하기 더 어렵다. 시급이나 알바 일자리는 이렇게 도처에 널려 있다. 그런 일자리 공백은 이주 노동자들이 채워 가고 있다. 국민소득 2만~3만달러에 대학까지 졸업한 아이들에게 눈높이를 낮춰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가구공장에서 아교 칠이나 하라고 권할 수는 없다.

정권마다 대기업을 옥죄어 왔다. 중소기업은 장려·보호·유지해 왔다. 골목상권은 깡패와 바보들까지 가세하면서 결사적으로 지켜냈고, 대형 유통업체는 점포 확장 등 추가적인 영업 활동을 제한당했다. 그 결과 대기업 일자리는 사라졌고, 눈높이를 낮춰야 하는 일자리들은 유지·장려·보호됐다. 골목상권과 함께 골목의 시급과 알바는 그런대로 유지됐다. 동반성장, 골목상권 보호, 중소기업 고유업종 제도, 전통시장 육성, 경제민주화는 그것에 걸맞은 싸구려 일자리만 남겨 놓았다. 정책은 성공한 것이다!

놀랄 일은 심지어 청와대 회의에서조차 취업유발계수를 오독하는 정책들이 난무하고 있다는 점이다. “매출 10억원당 삼성전자는 일자리 몇 개 못 만들지 않나. 중소기업과 서비스업종 일자리라야 취업유발계수가 높다”는 주장은 물론 ‘틀린 말’이다. 취업유발계수가 가장 높은 일자리는 농업이다. 다음이 파견업 등 소위 사업서비스업이다. 취업유발계수가 높은 일자리는 당연히 허드렛일자리다. 생산성이 낮고 임금도 낮다. 취업유발계수가 무엇인지 모르는 엉터리 경제학은 정부 예산과 자본을 생산성이 낮은 곳으로 배분하는 엉터리 정책을 낳았고 역시 큰 성공을 거두었다. 비정규직 단기 시급류 알바 일자리만 남아 있는 것은 정부의 경제정책이 실패해서가 아니라 성공했기 때문이다. 노동조합 보호 역시 일자리를 크게 줄이는 데 성공했다.

생각해보라. 지난 10여년간 한국 정부가 추진해 왔던 정책들을…. 모두가 골목과 중소기업 등 낮은 생산성 분야를 온존시키며 창조적 파괴를 거부해 온 것이다. 세계적 기업일수록 비판의 대상이었다. 그 결과 값싼 내수용 일자리만 남았다. 지금 대통령은 청년 실업을 염려한 끝에 자선기금으로 펀드를 조성할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지금도 사회적 합의 운운하면서 노동조합을 파트너로 삼고 있다. 노동유연성 개혁은 지금도 변죽만 울린다. 에바 페론은 더 자주 기부금을 내놨다. 그럴수록 더 많은 가난이 쏟아졌다. 일자리는 기업이 창출해 낸다. 좋은 일자리는 더욱 그렇다. 타이피스트를 보호하면 컴퓨터가 보급되겠는가. 버스안내양을 보호하면 버스카드 공장이 생겨나겠는가 말이다. 바보들은 그렇게 열심히 일을 한다.

정규재 주필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