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nug.com
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nug.com
미국 하인즈는 글로벌 시장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는 세계 최대 케첩회사다. 연 8억달러 수준인 미국 케첩시장 점유율도 60%에 육박한다. 버거킹 등 유명 글로벌 햄버거 프랜차이즈는 대부분 하인즈 케첩을 쓴다. 하지만 하인즈도 힘을 쓰지 못하는 시장이 있다. 바로 한국이다. 1971년 출시된 오뚜기 케첩이 하인즈를 제치고 수십년 동안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1980년대에 하인즈와 치열하게 경쟁한 끝에 토마토 함량을 높인 제품으로 승부를 결정지었다. 오뚜기는 연 800억원대인 국내 케첩시장에서 80%가 넘는 압도적인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소리 없이 강하다…식품업계 선두주자

조용한 행보 때문에 덜 알려졌지만 오뚜기는 소리 없이 강한 식품시장의 선두주자다. 마요네즈 카레 식초 당면 등 1위 제품이 30여 품목에 달한다. 한국인의 밥상에 거의 매일 오뚜기 제품이 오른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오뚜기의 지난해 매출은 1조7817억원이다. 1~2년 안에 2조원대 진입이 예상된다. 오뚜기의 장점은 꾸준함이다. 매출은 2007년 1조원을 돌파했다. 이후에도 안정적인 매출 성장세를 이어가 이후 7년 동안 68% 불었다. 소비경기 부진이 뚜렷했던 올 상반기에도 전년 동기 대비 3.8% 증가했다.

오뚜기는 1969년 함태호 명예회장(85)이 창립한 풍림상사가 모태다. 함경남도 원산 출신인 함 명예회장은 ‘식품보국’을 앞세워 불혹의 나이에 창업했다. 1980년 회사명을 오뚜기식품으로 바꾼 뒤 적극적인 인수합병에 나섰다. 1987년 청보라면을, 2006년 만두피 생산회사 삼포식품을 사들이며 덩치를 키웠다.

시장 1위 제품 30여개…꾸준한 성장세 지속

꾸준한 실적의 원동력은 수많은 1등 제품에서 나온다. 1969년 창사와 함께 출시한 카레는 46년 동안 1위를 지키고 있는 이 회사의 대표 제품이다. 카레 출시 당시는 일본의 S&B 등 외국 기업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창업주인 함 명예회장은 카레가 주식인 쌀과 잘 어울리는 데다 매운 맛을 즐기는 한국 사람의 기호에도 맞는다고 보고 밀어붙였다. 함 명예회장의 판단은 적중했다. 주성분인 강황이 건강에 좋은 것으로 인식되고, 손쉽게 외식 느낌을 낼 수 있다는 장점에 힘입어 단숨에 시장 1위에 올랐다. 현재 분말카레 시장에서 오뚜기의 점유율은 90%에 근접하고 있다.

마요네즈도 압도적인 점유율을 보여주고 있다. 오뚜기는 한국크노르 등 글로벌 기업이 장악하고 있던 1972년 마요네즈 시장에 뛰어들었다.

온도 변화에 따라 상하기도 하는 민감한 제품 특성 때문에 마요네즈 출시 초기에는 고전했다. 하지만 시행착오 끝에 터득한 노하우로 품질을 차별화해 지금은 80%대의 점유율로 고공비행하고 있다.

‘3분 요리’로 새 시장 창출…35년 즉석식품 ‘왕좌’

식생활 편리함을 높이고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려는 노력도 선두 자리를 유지하는 비결로 꼽힌다. 1981년부터 35년 동안 즉석식품 왕자 자리를 지키고 있는 ‘오뚜기 3분 요리’에서 이 회사의 저력이 잘 드러난다.

‘3분 요리’는 1981년 ‘3분 카레’를 시작으로 ‘3분 짜장’ ‘3분 햄버그’ ‘3분 미트볼’ 등이 잇따라 출시되며 큰 인기를 끌어온 브랜드다. 최근 ‘집밥’ 열풍과 함께 가정간편식(HMR) 시장이 급성장하자 시장 변화를 앞서 이끈 이 회사의 레토르트 식품들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2010년부터 회사를 이끌고 있는 2세 경영인인 함영준 회장의 공격 경영도 주목 대상이다. 함 회장은 야구선수 류현진 선수를 진라면 광고모델로 활용하고 진라면의 전면 리뉴얼을 지시하는 등 라면시장 공략에 주력했다. 그 결과 오뚜기는 ‘만년 3위’였던 라면시장에서 지난해 2위로 뛰어올랐다. 진라면은 매출 1000억원을 돌파해 회사의 첫 ‘메가브랜드’ 상품이 됐다.

‘글로벌 오뚜기’ 수출 매년 10% 이상 늘린다

오뚜기의 요즘 관심사는 해외시장 공략이다. 1998년 미주지역에 라면, 카레 등을 수출한 뒤 유럽 오세아니아 아시아 아프리카 등 세계 30여개국으로 제품을 실어나르고 있다.

지난해 수출은 1000억원을 돌파했다. 1996년부터 보따리상을 통해 러시아에서 팔리기 시작한 마요네즈가 대표 수출 품목이다. 노란 뚜껑의 오뚜기 마요네즈는 러시아에서는 모든 음식에 넣어 먹는 ‘만능 소스’로 인기를 끌고 있다. 러시아 회사들이 유사 제품을 내놓고 있지만 원조의 고소한 맛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수출은 2011년 500억원을 넘어선 뒤 매년 10% 이상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치즈라면도 인기 수출 품목이다. 지난해 홍콩으로 수출한 치즈라면만 50억원어치에 달한다. 치즈라면은 싱가포르 대만 등 다른 동남아국가에서도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국내 1위를 넘어 ‘글로벌 오뚜기’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걸음이 본격화됐다”고 말했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