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감에 스토리 담은 레고, 바비 꺾고 '완구 1위' 탈환
조립형 놀이블록으로 유명한 덴마크 완구업체 레고가 바비인형을 필두로 한 미국 마텔을 제치고 글로벌 완구업계 1위를 탈환했다.

컴퓨터 게임에 치이고 사업 다각화마저 실패로 돌아가면서 고전했던 ‘장난감 왕국’ 레고의 부활 비결은 스토리다. 영화 ‘스타워즈’의 주인공을 인형으로 만들거나, 반대로 레고 인형을 주인공으로 한 애니메이션 영화를 제작하는 방식으로 어린이들이 장난감과 함께 이야기 속 주인공처럼 놀 수 있게 했다.

레고는 올해 상반기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3% 증가한 21억달러(약 2조5000억원)를 기록했다고 2일(현지시간) 발표했다. 1932년 회사를 설립한 이후 최대 실적이다. 지난해 하반기 1위에 올랐던 마텔은 상반기 19억달러의 매출을 내는 데 그쳐 다시 2위로 주저앉았다. ‘트랜스포머’ 모형 장난감 등으로 잘 알려진 해즈브로가 지난해 상반기보다 0.2% 증가한 15억달러로 3위를 차지했다.

레고는 영업이익에서도 경쟁사를 크게 앞질렀다. 상반기에 6억9500만달러를 벌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7% 늘어난 수치다. 해즈브로는 1억3000만달러의 영업이익을 냈고, 마텔은 적자(5400만달러)로 전환했다.

레고의 상반기 실적은 ‘닌자고’와 ‘엘프’ 등이 견인했다. 닌자고는 닌자 인형을 주인공으로 하는 TV 애니메이션이다. 레고는 영화의 주인공을 고스란히 완구로 제작해 판매한다. 레고가 지난해 개봉한 영화 ‘레고무비’는 미국 박스오피스에서 3주 연속 1위를 차지했으며 영화에 등장한 주인공 인형의 판매호조에 큰 영향을 줬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레고 인형이 주인공으로 나온 영화의 장난감뿐만 아니라 영화 ‘스타워즈’ 시리즈 등을 레고 인형으로 만든 상품도 불티나게 팔렸다”며 “완구업계 불황에도 불구하고 레고는 장난감에 스토리를 입히는 방식으로 완벽하게 되살아났다”고 보도했다.

레고는 2000년을 전후해 대규모 적자에 시달렸다. 의류와 시계, 게임 등 분야에 진출했으나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덴마크, 영국, 미국 등에 세운 테마파크 레고랜드에 투자를 강화했으나 쓴맛만 봤다. 2004년에는 2억7000만달러의 적자를 냈다. 레고는 2004년 맥킨지 컨설턴트 출신의 외르겐 비 크누드스토르프를 최고경영자(CEO)로 영입해 활로를 모색했다.

크누드스토르프 CEO는 레고랜드 지분의 70%를 블랙스톤에 매각하는 등 비주력 사업을 정리하고 스토리를 입힌 완구 판매 전략에 집중했다. 어린 시절 레고 완구를 갖고 놀았던 성인을 위해 수십만원짜리 고급 상품을 개발하기도 했다. 이런 노력 끝에 레고는 10년 만에 매출이 다섯 배로 증가했다. 레고는 올해 닌자고를 극장용 영화로도 제작해 개봉하고 2017년에는 레고무비2를 공개할 예정이다.

반면 마텔은 바비인형의 몸매가 비정상적인 데다 외모 지상주의를 부추긴다는 지적 속에 판매량이 줄고 있다. 지난해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여자아이 선물 1위 자리를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의 주인공 엘사인형에 빼앗기기도 했다. 레고는 3차원(3D) 프린팅 시장이 커질 것으로 전망하고 소비자가 집에서 직접 레고 완구를 제작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 시장을 더욱 확대할 계획이다.

박종서 기자 cosm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