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규어 XE 직접 타보니, 빗길서 깔끔한 코너링…BMW 3 주행성능과 벤츠 C의 안락함 겸비
비가 내리는 도로에서 시속 200㎞로 자신있게 달릴 수 있는 차가 얼마나 있을까.

태풍 ‘고니’의 영향으로 전국에 세찬 비가 내리던 지난달 24일, 강원 대관령 일대에서 재규어의 신차 XE를 시승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XE를 타고 강릉 경포대의 한 호텔을 출발해 대관령길, 영동·동해고속도로, 정동진 해안도로를 경유하는 178㎞였다. 산간 지방의 급회전 코스와 고속도로가 포함돼 XE의 코너링과 가속 성능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도로를 꽉 잡고 달리는 듯한 접지력

재규어 XE 직접 타보니, 빗길서 깔끔한 코너링…BMW 3 주행성능과 벤츠 C의 안락함 겸비
시승 모델은 가솔린(XE 20t)과 디젤(XE 20d) 두 가지였다. 먼저 가솔린 모델을 타고 경포대에서 평창 올림픽스키점프경기장까지 50분가량 급회전 구간을 달렸다. 대관령을 넘는 오르막길이 코스의 대부분이었다.

코너링이 좋은 차를 타고 급회전 구간을 달려 보면 차량의 네 바퀴가 지면에 딱 달라붙어 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재규어 XE가 그런 차였다. 속도를 충분히 줄이지 않고 ‘약간 빠른 것 아닌가’하는 우려와 함께 급커브를 틀어도 차체가 밀리는 현상이 거의 없었다.

눈으로 보기엔 상당히 급격한 커브길인데 운전대를 많이 돌리지 않아도 매끄럽게 회전 구간을 통과했다. ‘토크 벡터링’ 기술이 이런 민첩한 코너링을 가능하도록 도와준다고 재규어 측은 설명했다. 토크 벡터링은 지면 상태와 회전 각도 등 주행 상황에 따라 뒷바퀴에 자동으로 브레이크를 잡아주는 시스템이다.

2.0L 터보 가솔린 엔진의 성능은 최고 출력 200마력, 최대 토크 28.6㎏·m이다. 가파른 대관령 산길을 탈 때도 힘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가속 페달을 조금만 세게 밟아도 오르막길에서도 차가 통통 튀어나가 주의해야 했다.

스키점프장에서 영동·동해고속도로를 타고 정동진으로 달렸다. 폭우가 쏟아져 만족할 만큼 속도를 내진 못했다. 하지만 접지력을 실감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4륜구동을 모는 것처럼 비속에서도 안정감 있는 주행할 수 있었다.
재규어 XE 직접 타보니, 빗길서 깔끔한 코너링…BMW 3 주행성능과 벤츠 C의 안락함 겸비
시속 200㎞에서도 안정감

정동진에서 다시 경포대까지 돌아가는 길엔 디젤 모델(XE 20d)을 탔다. 최고 출력 180마력, 최대 토크는 43.9㎏·m다. 가솔린에 비해 출력은 적지만 토크가 높은 만큼 치고나가는 힘이 좋다.

가솔린 모델은 실내에서 엔진 소음이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정숙했다. 반면 디젤에선 특유의 배기음을 느낄 수 있다. 남미를 대표하는 맹수 재규어가 ‘으르렁’ 포효하는 듯했다.

수동변속기처럼 기어를 조작할 수 있는 패들시프트가 운전대에 달려 있다. 자동변속기 모드에선 80㎞/h면 벌써 최고 단수인 8단까지 올라가지만 패들시프트를 쓰면 엔진 회전수(rpm)를 최대한 끌어올리면서 더 재미있게 운전할 수 있다. rpm 3000 이상까지 밟으면서 순간 가속력을 제대로 확인해볼 수 있었다.

마침 비가 조금 잦아들어 액셀러레이터를 꾹 밟았다. 순식간에 속도계가 치고올라갔다. 속도를 올릴수록 차량이 지면에 착 달라붙는 안정감이 느껴졌다. 풍절음도 거의 들리지 않았다. 200㎞/h까지 속도를 올렸지만 웬만한 중형차보다 더 안정적인 주행 성능을 보여줬다.

디젤차는 가솔린보다 토크가 높아 순간 가속력은 좋지만 출력이 낮아 고속으로 갈수록 힘이 달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XE 20d는 150㎞/h에서 200㎞/h까지 가속하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가솔린 20t는 아마 더 조용하고 부드럽게 200㎞/h를 넘길 수 있을 것 같다.

재규어는 XE를 주행성능과 승차감을 모두 갖춘 차라고 강조한다. 주된 타깃인 BMW 3시리즈만큼 운전의 즐거움을 주는 동시에 메르세데스벤츠 C클래스처럼 정숙하고 편안하다는 것이다. 타보기 전엔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네시간 이상 달려 보니 주행성능과 승차감을 모두 갖춘 차도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강릉=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