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 머니' 앞세운 중동 항공사의 공습…유럽노선 40% 할인 공세
‘오일 머니’로 무장한 중동 항공사들이 자국 정부 지원을 등에 업고 한국 하늘길을 공략하고 있다.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등 국내 대형 항공사보다 40% 넘게 싼 항공권 가격을 무기로 유럽노선 항공 여객 수요를 빨아들이고 있는 것.

대한항공의 지난달 인천~런던 직항 노선의 항공권 가격(왕복 기준)은 평균 180만원대였지만 중동 최대 항공사인 에미레이트항공은 두바이 경유 인천~런던 노선을 약 120만원에 팔았다. 허희영 항공대 경영학과 교수는 “단거리 노선에서 저비용항공사와 가격 경쟁이 한창인 대형 항공사가 장거리 노선에선 중동 항공사라는 복병을 만났다”고 말했다.

○급증하는 중동 항공사 이용객

중동 항공사의 저가 공세에 한국 탑승객 수가 급증하고 있다. 중동 항공사를 대표하는 에미레이트항공, 카타르항공, 에티하드항공 등 3사의 지난해 국내 수송객 수는 68만5388명으로 2011년 50만5142명에서 4년 만에 35% 늘었다. 이 가운데 직항 승객 수는 13%에 불과하다. 87%인 59만4000여명이 인천에서 출발해 중동을 거쳐 미국, 유럽으로 가는 여행객이었다. 지난해 아시아나항공을 타고 유럽을 방문한 전체 탑승객(58만1733명)보다 많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4~6시간만 공항에서 대기하면 한국 항공사의 절반 가격으로 유럽에 갈 수 있는 상황”이라며 “두바이, 도하 등 중동 공항의 최신 시설 덕에 환승객이 불편함을 못 느끼는 것도 중동 항공사로 손님이 몰리는 이유”라고 지적했다. 에미레이트항공은 두바이 공항에 전용 터미널을 마련해 환승객 편의를 위한 샤워시설과 음식 등을 제공하고 있다.

중동 항공사가 다양한 환승 노선을 제공할 수 있는 이유는 허브 공항 육성을 추진하는 정부가 공격적으로 운항 노선을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 아랍에미리트(UAE) 정부는 지난해 한국 정부와의 회담에서도 중동~한국 노선의 운항 편수를 늘려달라고 요구했다. 허 교수는 “지리적 이점과 오일 머니를 바탕으로 중동 항공사가 덩치를 키우고 있다”며 “정부가 건설 프로젝트 수주의 반대급부로 운항 편수를 늘려준다면 국내 대형 항공사들이 고사 상태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공적으로 떠오른 중동 항공사

항공업계는 중동 항공사의 가격 경쟁력 뒤엔 막대한 정부 지원금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아메리칸항공, 델타항공, 유나이티드항공 등 3개 미국 항공사는 지난 2월 에티하드항공, 에미레이트항공, 카타르항공이 420억달러(약 49조7000억원) 규모의 정부 보조금을 받는 것은 자유경쟁에 어긋난다며 미국 정부에 중동 항공사의 미국 내 취항을 제한해달라고 요구했다. UAE 정부는 무상대여금과 대출보증, 공항세 면제, 공항 인프라 무상 제공 등의 방법으로 항공사를 지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연합(EU) 항공사들도 중동 국가와의 항공협정을 수정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5월 네덜란드 정부는 불공정 경쟁을 이유로 자국 공항에 중동 항공사가 취항하는 것을 제한했다. 정부 지원금을 바탕으로 덤핑 판매해 시장 질서를 교란하고 있다는 게 이유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정부 지원금을 받은 중동 항공사들이 항공기를 일시금으로 대량 도입해 구매 가격을 낮추고 있다”며 “할부나 리스 구매가 일반적인 국내 항공사가 가격 경쟁을 펼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허 교수는 “항공업계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미국과 유럽 국가의 대응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순신 기자 soonsin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