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쿠바 유학생 카레림 로레나(왼쪽)와 베르무데스 마리스베예. / 남서울대 제공
국내 첫 쿠바 유학생 카레림 로레나(왼쪽)와 베르무데스 마리스베예. / 남서울대 제공
[ 김봉구 기자 ] 갈색 머리에 깊은 눈, 또렷한 이목구비. 대학의 한국어학당에서 어학연수 하는 여느 외국인 유학생들과 다름없는 모습이다. 하지만 더듬더듬 갓 배운 한국어를 구사하는 카레림 로레나는 100년 이상의 세월을 거쳐 한국으로 돌아온 특별한 가족사의 주인공이다.

지난 21일 충남 천안 남서울대에서 만난 로레나는 ‘1호 쿠바 유학생’이다. 올해 3월 입국해 이 대학 국제문화교류원 한국어학당에서 우리말을 배우고 있다. 그녀는 사실 한국과 오랜 인연이 있다. ‘애니깽’(멕시코 이민 1세대) 고(故) 임천택씨가 로레나의 증조부다.

임씨는 일제가 대한제국을 침탈한 1900년대 초 멕시코로 이주한 뒤 1921년 쿠바로 넘어갔다. 타국에서 힘들여 번 돈을 상하이 임시정부에 독립운동자금으로 보내는 등 독립운동을 펼친 공로를 인정받아 대전 현충원에 잠들었다.

“정말 반가웠고… 조용했어요. 너무 아름다워요. 풍경이, 이런 곳에… 감동적이었어요. (증조할아버지가) 자랑스러워요.”

이역만리 먼 길을 찾아와 임씨의 묘소를 참배한 후손의 감상은 특별했다. 매끄러운 한국어는 아니지만 마음은 충분히 와 닿았다. 함께 자리한 학교 관계자는 “아름다운 현충원 풍경과 독립유공자 증조할아버지의 묘비를 직접 보고 가슴 벅찬 감동을 느꼈다”고 정리해 전달했다.

할머니와 어머니가 담근 김치를 먹고 자란 로레나가 자신의 뿌리를 찾아 왔다면 또 다른 1호 유학생 베르무데스 마리스베예는 한류에 푹 빠져 한국행을 택했다.

지난 5월 숭실대에서 열린 '외국인 유학생 장기자랑 경연대회'에 참가, 입상한 마리스베예.  / 남서울대 제공
지난 5월 숭실대에서 열린 '외국인 유학생 장기자랑 경연대회'에 참가, 입상한 마리스베예. / 남서울대 제공
“저는 한국의 언어와 한국의 음악과 한국의 문화를 좋아해서 한국에 대해 더 알고 싶습니다. 또 미래에 한국에서 살고 싶고 일하고 싶으니까 한국말을 잘 하려고 합니다.”

마리스베예가 입학신청서에 한글로 또박또박 써내려간 진심 어린 ‘지원동기’다. 그녀는 쿠바 현지 한인들이 주축이 돼 설립한 호세 마르띠 문화원에서 케이팝(K-POP)을 익혔다. 문화원에서 아르바이트하며 한국에 가는 꿈을 키웠다.

가수가 장래 희망인 마리스베예는 틈틈이 갈고 닦은 노래 실력을 마음껏 펼쳤다. 지난 5월 법무부 주최 ‘세계인의 날’ 기념 외국인 유학생 장기자랑 경연대회에서 케이윌의 ‘니가 필요해’를 불러 인기상을 받았다. 같은달 열린 학교 가요제에서도 참가상을 수상했다. 남서울대 관계자는 “유학생들만 참여한 대회도 아니었다. 국내 학생들 못지않은 실력으로 상을 받았다”고 귀띔했다.

두 학생은 가장 인상 깊었던 기억으로 N서울타워(남산타워)와 인사동 일대를 견학한 문화체험 행사를 꼽았다. 주말마다 국내 곳곳을 찾아다니며 한국의 발전상을 렌즈에 담았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 탓에 더 많은 체험을 하지 못한 건 아쉬움으로 남았다고 했다.

북한과 수교를 맺은 사회주의 국가 쿠바는 한국과 국교가 단절돼 있다. 1959년 쿠바 혁명을 기점으로 50년이 넘었다. 그럼에도 쿠바인들의 한국에 대한 관심은 남다르다. “현지에선 한국 드라마나 음악이 CD로 팔리고 있다. 한국과 한국어를 배우려는 쿠바 젊은이들이 많다”고 이들은 입을 모았다.

이런 분위기 덕분에 양국 교류의 물꼬가 트였다. 국립국제교육원이 해외 각국에서 실시하는 한국어능력시험(TOPIK)이 작년 쿠바에서 최초로 시행됐다. 로레나와 마리스베예도 이를 계기로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학교 측은 1호 유학생의 의미를 새겨 두 학생의 6개월간 학비와 생활비를 100% 지원했다. 남서울대 관계자는 “로레나와 마리스베예는 국제교육원에서 장학생 추천을 받아 유학생들의 토픽 시험장으로 활용되는 남서울대로 오게 됐다”며 “양국 교류의 문을 여는 차원에서 학교가 전액 지원해 한국어 연수를 돕고 있다”고 설명했다.

로레나와 마리스베예는 다음달 6개월간의 어학연수 과정을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간다. “미국에 이어 한국과도 수교가 된다면 더 많은 쿠바 사람들이 한국을 찾을 것”이라고 기대한 이들은 내년 봄 국내 대학에 정식 입학해 한국과의 인연을 이어갈 예정이다.

“할아버지가 그랬듯 양국 수교를 위해 우리들 쿠바의 한국 자손들도 힘쓰겠습니다.”(로레나) “한국을 배우는 호세 마르띠 문화원에서도 쿠바와 한국의 수교를 위해 노력할 거예요.”(마리스베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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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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